안락한 삶 버리고 독립운동 택했던… 韓 최초의 의사들
세브란스 의학교 출신 의사 7人 조명
“1908년 배출된 우리나라 최초 의사 7명은 독립운동가이기도 했습니다. 병원을 떠나 학교를 만들어 교육 운동을 했고, 독립운동 자금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죠.”
최근 ‘올리버 에비슨 자료집’ 여섯 번째 호를 펴낸 박형우 연세대 객원교수는 지난달 27일 “한국 최초 의사는 후학 양성은 물론 지식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에 큰 역할을 했다”며 “안정적인 환경을 박차고 사회를 위해 헌신했던 이들의 모습을 기억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캐나다 의사였던 올리버 에비슨(Avison·1860~1956)은 의료 선교를 위해 1893년 조선 땅에 발을 디딘 뒤 우리나라 최초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濟衆院·세브란스 병원의 모태) 원장을 맡아 첫 조선인 의사를 양성했다. 이번 자료집은 에비슨이 교육한 조선인 학생들이 1908년 국내 최초 의사 면허를 받기까지 수련 과정과 세브란스병원 의학교를 졸업한 뒤 이들의 행적을 기록했다. 이번 자료집을 통해 졸업 이후 독립운동과 의료계 후학 양성에 매진했던 이들의 잊힌 역사를 되살려냈다는 평가다. 박 교수는 최초 의사 7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에서 그동안 잘못 알려졌던 인물 이름도 바로잡았다.
세브란스병원 의학교가 배출한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는 김필순·김희영·박서양·신창희·주현칙·홍석후·홍종은 등 7인이다. 이들 중 4명은 일제에 주권을 완전히 빼앗긴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중국과 몽골 등에서 독립운동에 직접 뛰어들었다. 박 교수는 “의학 기술과 전문 지식을 갖춘 이들은 일본 헌병대의 표적이 됐지만, 이리저리 거처를 옮겨가면서도 끝까지 독립운동에 매진했다”고 했다. 졸업 직후 모교 교수로 후학을 양성한 김필순은 안창호와 신민회 활동을 했고, 1911년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가와 한국인을 치료했다. 민족 운동 단체 흥사단에서 활동한 주현칙은 상해에 ‘삼일의원’을 열어 한국인을 진료했다.
이들은 사회적 지위가 보장된 의사였지만, 해외 망명길에 올라 다양한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신창희는 상해 임시정부 교통부 요원이 돼 군자금을 모으는 역할을 맡았고, 박서양은 간도에 학교를 세워 조선어를 가르치며 교육 활동을 펼쳤다.
박 교수는 “이들의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에 뛰어든 후배 의사들이 상당수”라며 “1917년 자료를 보면, 의학교 후배 중 4분의 1 정도가 졸업 후 해외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락한 삶을 버리고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던 선배들의 모습이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됐다는 것이다. 7인의 의사들은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 해산한 1907년 당시 부상병을 치료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학생 신분이던 이들에겐 ‘다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의사의 본분’임을 깨닫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최초 의사 7명 중 주현칙을 제외한 6명은 졸업 직후 학교에 남아 후학을 양성했다. 박 교수는 “국내에서 근대 서양 의학이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이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김필순은 스승 에비슨을 도와 의학 교육에 필요한 교과서 대부분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6명 중 일부는 졸업 후 간호원 양성학교에서 강의를 맡아 간호 인력을 길러내기도 했다.
박 교수는 “이들은 활약상에 비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김필순은 정보 요원으로 의심되는 일본인 의사가 준 우유를 먹고 급사했고, 다른 의사들도 독립운동에 헌신하며 일제에 쫓기는 삶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그는 “독립의 씨앗이 되겠다고 나선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활동하다 대부분 일찍 생을 마감했다”며 “우리나라 최초 의사들의 삶과 뜻을 우리가 기록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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