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의 기시다’ 민생 실책으로 쫓겨날 위기

도쿄/성호철 특파원 2023. 11. 8.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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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키의 법칙’ 위험 수준에 접근
디지털 주민증·설익은 감세 ‘역풍’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연합뉴스

일본 기시다 정권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해 ‘총리 조기 강판’이란 위험 신호등이 켜지고 있다. 지난 5월만 해도 한일 관계 개선과 히로시마 G7(7국)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로 내각 지지율이 50%를 넘었는데, 약 6개월 만에 반으로 줄어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기시다 총리가 밀어붙인 디지털 주민증의 오류 사태와 설익은 감세(減稅) 정책 등 민생 관련 잇따른 실책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7일 요미우리신문은 “집권 자민당 내부에서 ‘아오키(靑木)의 법칙’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거론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자민당의 중량급 정치인은 이 신문에 익명으로 “자민당이 정권을 잃은 2009년 직전 분위기와 (현재 기시다 정권이) 닮았다”며 “빨리 수습하지 않으면 다음 국회의원 선거 때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지원

아오키 미키오 전 관방장관이 주창한 ‘아오키의 법칙’은 내각 지지율과 집권당의 지지율 합이 50% 아래로 내려가면 정권이 와해된다는 것이다. 의원내각제인 일본 정치권에서 ‘총리 사퇴와 정권 붕괴’의 시금석으로 통하는 경험칙이다. 실제로 모리 내각(내각 지지율 8.6%, 자민당 지지율 22.5%)과 아소 내각(내각 22.2%, 자민당 23.4%)이 붕괴 직전에 지지율 합이 50% 아래로 내려갔고, 민주당 정권인 하토야마 내각(내각 19%, 민주당 20%)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일본 7개 주요 언론사의 지지율 조사를 보면 마이니치신문과 지지통신 등 2곳의 여론조사에선 이미 지지율 합이 50% 밑으로 내려갔다. 예컨대 지난달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내각은 25%의 지지율에 그쳤고, 자민당 지지율도 23%였다. 지지통신 조사도 합계 47%(기시다 내각 26%, 자민당 21%)였다. 요미우리신문·아사히신문 등 다른 여론조사는 아직 지지율 합이 50~60%대지만 지속적인 하락세다.

이번 달 중순의 여론조사에서도 하락세가 지속되면, 자민당 내부에서 “기시다 총리로는 안 된다”는 이른바 ‘총리 끌어내리기’가 시작될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달 말 자민당의 세코 히로시케 참의원 간사장은 국회 연설에서 “(기시다가) 국민이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며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 9월 기시다 총리는 3개월 전에 사망한 아오키 전 관방장관의 송별식에서 “선생의 언어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었다”며 “그 언어로 몇 차례나 정치가 앞으로 나갔고, 시대를 움직였다는 걸 나는 잘 안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기시다 본인이 ‘아오키의 법칙’을 믿는 자민당 의원들에게 교체 요구를 받을지 모를 위기에 처한 것이다.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 하락은 ‘외교적 성과’에만 매달리다가 정작 민생에선 국민의 의사를 잘못 읽는 실패를 거듭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시다 내각은 일본판 디지털 주민증인 ‘마이넘버카드’를 성급하게 추진하다가 수천 명의 은행 정보가 잘못 입력되는 행정 오류 논란을 불렀다. 이달 초에는 떨어지는 지지율을 만회하려고 총 3조엔(약 26조1000억원)을 들여, 약 9000만명에게 1인당 4만엔씩 세금을 줄여주는 소득세·주민세의 감세를 발표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나중에 선거에서 이기려는 현금 살포” “국민이 낸 세금으로 생색내고 나중에 증세하려는 것”이라는 여론 반발에 부딪힌 것이다.

연이은 실책으로 궁지에 몰린 기시다는 당장은 유력한 경쟁자가 없는 덕분에 숨을 고르는 상황이다.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아베파는 아베 신조 전 총리와 같은 강력한 리더가 없어 분열된 상태다.

일본 정치권의 한 인사는 “기시다는 자민당의 잠재적 경쟁 후보인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 하기우다 고이치 정조회장, 고노 다로 디지털상 등을 본인의 내각과 당 중책에 앉혀 반기를 들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다”면서도 “지지율 추락이 계속되면 당 내부 불만을 더 이상 잠재우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아오키의 법칙

내각과 집권당의 합산 지지율이 50% 밑으로 떨어지면 결국 정권이 와해된다는 일본 정치권의 통설이다. 오부치 게이조 총리 집권기에 관방장관을 지냈던 아오키 미키오(1934~2023) 전 자민당 참의원 간사장이 주장해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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