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골든타임 놓치지 않으려면 ①탈총선 ②청년 경청 ③전문가 타협
최대 걸림돌 내년 총선, 연금의 정쟁화 막아야
"총선 이후 '여야 대타협'이란 정치 선언 필요"
공론화, 세대구조 벗어나 '모든 청년계층' 참여를
정부와 국회의 책임 떠넘기기로 국민연금 개혁의 불씨가 꺼지고 있다. 2007년 이후 개혁 부재로 '매우 적게 내고 적게 받는' 구조가 굳어져 노후 빈곤과 재정 부담의 악순환에 빠졌다. 개혁의 시급성은 모두가 인정하지만 우선순위 논쟁과 정치적 부담에 가로막혔다. 전문가들은 "세대 간 고통을 분담해서라도 살릴 수 있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우려한다.
7일 전문가들은 연금개혁 골든타임을 사수하기 위한 과제로 '정치적 대타협'을 첫손에 꼽았다. 각국의 성공 사례를 봐도 연금개혁은 개혁 방향에 대한 정치 진영 간 간극이 적을 때 가능했다. 일본은 2004년 여야가 비슷한 개혁안을 내놓고 논쟁을 최소화했고, 독일은 2001년 사회적 대타협 방식이 난항을 겪자 여야 합의로 처리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연금개혁 성공 조건을 보면 보수·진보 개혁안에 접점이 많거나 이견이 적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내년 4월 22대 총선을 앞둔 터라 정치적 갈등이 가장 심할 때다. 연금이 정쟁 프레임에 갇히면 개혁은 힘들어지는데, 선거로 취지가 퇴색된 기초연금 사례가 대표적이다. 기초연금은 2008년 역사가 짧은 국민연금을 보완하기 위해 노인 소득을 메워주고, 제도가 성숙되면 줄여나가기로 설계됐다. 그러나 선거 때마다 노인층 표를 의식한 기초연금 인상 공약 남발로 재정에 큰 부담을 주는 제도로 전락했다.
한나라·민노당 단일안 나와 성공했던 2007년 연금개혁
이에 연금 논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총선 이후 '이때까지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로드맵을 여야가 합의하는 '탈총선 전략'을 고려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김연명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민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총선 공약에 연금이 들어가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이 너무 벌어져 논의가 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총선 전까지는 전문가 중심으로 안을 좁히고, 정쟁이 최소화되는 총선 이후 국회가 타협을 시도하자는 것이다.
2007년 개혁이 성공했던 것도 한국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보수·진보정당 연대'로 이견을 좁혔기 때문이다. 2003년 10월 정부는 당시 60%였던 소득대체율을 50%로 삭감하자는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했는데, 한나라당(현 국민의힘)과 민주노동당(현 정의당) 모두 "사각지대가 넓어진다"며 반발했다. 두 당은 정부안에 맞서 기초연금 도입이란 단일안을 냈고, 2006년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를 수용하면서 지금의 제도를 만들었다.
"독일처럼 청년 문화행사서 연금 논의 공론화를"
정치권이 외면할 수 없게 국민의 관심을 유도하는 노력도 뒷받침돼야 한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회가 앞으로 할 공론조사가 고립된 채 이뤄지면 안 된다"며 "공론화 과정에 참여하지 못해도 의견을 내고 지켜볼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미래세대인 청년층의 참여를 활성화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청년들은 이 과정에서 대학생이나 대기업 직장인 등 특정 계층만 참여하는 구조는 벗어나야 한다고 요구했다. 문유진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대표는 "지금처럼 청년 간담회처럼 세대로 접근하는 구조로는 여론 확장에 한계가 있다"며 "플랫폼노동자나 비정규직 청년 등 계층 간 문제로도 접근해야 여러 의견을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형식의 다양화도 주문했다. 문 대표는 "독일은 최대한 많은 청년이 관심을 갖게 문화행사에 연금 어젠다를 던졌다"며 "영화제나 콘서트 때 연금 섹션을 만들어 자연스럽게 접근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도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타운홀 미팅에서 60여 명의 시민과 만났는데, 연금에 대한 공론화도 이런 구체적인 액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그룹 통한 성공 사례도… "중재자 통한 양보 있어야"
전문가들이 한발씩 물러서 합의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다른 나라의 개혁 과정을 보면 정치·사회적 타협이 막힐 경우 전문가 그룹이 이를 해소할 대안이 되기 때문이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처럼 두 정당의 정쟁이 극심한 나라는 협의가 쉽지 않은데, 영국이 이를 보여준다"며 "공적 협의형 기구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은 2007~2014년 정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수의 전문가로 구성된 '연금위원회'를 꾸려 위원회가 객관적인 안을 내도록 유도했다. 영국 정부는 위원회 안을 대부분 수용했고, 대국민 토론회 등 설득 작업을 벌였다.
우리나라도 연금특위 자문위원회란 전문가 그룹을 만들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해 좀처럼 진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남찬섭 교수는 "전문가들이 서로 양보할 수 있게 중재자가 필요하다"며 "최저임금위원회처럼 이해당사자나 공익위원을 참여시켜 안을 좁혀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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