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에 취해 비싸게 받다가, 고꾸라진 위스키
직장인 최모(40)씨는 자칭 ‘위스키 마니아’다. 그런 그가 지난여름부턴 위스키 금주(禁酒)를 선언했다. 최씨가 즐겨 마시던 싱글몰트 글렌피딕 15년산(700mL)은 지난해 대형 마트에서 9만원 정도면 살 수 있었다. 최근엔 가격이 15만원 안팎까지 올랐다. 최씨는 “예전엔 발품 팔아 싼 위스키를 사 마셨지만 이젠 가격이 너무 올라 소주나 맥주를 마신다”고 했다.
위스키 열풍이 확연히 꺾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혼술(혼자 술 마시는 사람) 문화가 유행하고 하이볼(위스키와 음료를 섞어 마시는 술)이 인기를 끌면서 위스키 소비가 급증하자 가격도 덩달아 뛰었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프리미엄 싱글 몰트 위스키의 경우, 코로나 때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며 10년 이상 숙성 위스키의 가격이 급등한 것도 영향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국내 위스키 열풍에 올라탄 수입 업체들이 지나치게 가격을 올리는 ‘배짱 장사’ 탓에 국내 위스키 가격은 외국보다 비싸졌다.
◇주류업계 “위스키 유행, 사이클 끝났다”
위스키 시장 확장세는 일단 멈췄다. 7일 관세청 무역 통계에 따르면 지난 9월 국내 위스키류(스카치·버번·라이) 수입량은 2189t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2%(42t) 증가하는 데 그쳤다. 작년 9월(2147t) 이후 최저다. 올 들어 매달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던 위스키 수입량이 9월에 한 자릿수로 뚝 떨어진 것이다.
주류 업계에선 높은 주세, 수입사만 아는 깜깜이식 원가 구조, 복잡한 유통 과정 탓에 위스키 가격이 다른 나라보다 비싼 게 소비자에게 외면받게 된 이유로 꼽는다. 영국의 글로벌 주류 통계 업체 와인서처에 따르면 발베니 12년산 위스키의 소매점 평균 가격은 한국이 13만6000원이다. 일본은 7만3000원, 영국은 7만7000원이다. 미국에선 9만8000원에 살 수 있다. 우리나라 위스키 가격이 이들 나라보다 39~86% 비싼 것이다. 라가불린 16년산도 한국(20만3000원)이 최대 2배 넘게 비쌌다. 주류 업계에선 “위스키 업체의 가격 인상 러시가 끝내 제 발등을 찍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국내 위스키 시장은 10여 수입사가 대부분 공급하는 구조다.
◇”비싸서 안 사면 시장 축소”… 와인 전철 밟나
위스키 수입사에선 위스키 소비 감소가 유행 사이클이 끝나가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업계에선 주류 유행 사이클을 6~9개월 정도로 보는데, 위스키는 이미 1년 이상 유행했기 때문에 닥쳐올 일이었다는 것이다. 한 수입 업체 관계자는 “주류는 유행이 매우 짧다. 고가 위스키부터 하이볼용 저가 위스키까지 경험해볼 만한 사람은 다 경험해봤기 때문에 성장이 멈추고 감소세로 돌아서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위스키 도소매 업자들은 “터무니없는 비싼 가격이 원인”이라고 말한다. A 대형 마트의 9월 위스키 매출을 보면, 10만원 미만 저가 위스키는 작년보다 10% 이상 늘었다. 반면 10만원 이상 고가 위스키 판매 증가율은 5%에 못 미쳤다. A 마트 관계자는 “원래 비싼 위스키가 수차례 가격 인상으로 더 비싸지니 싼 위스키를 찾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B 도매상 직원은 “예전 같으면 판매량이 좀 줄면 수입사들이 할인 프로모션도 하면서 소비를 늘리려고 하는데 지금은 가격 올려놓고 ‘어차피 살 것’이라며 지켜보는 곳이 대부분이다”라고 했다.
주류 업계에선 위스키 시장이 와인 시장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2020년 코로나 시기 유행을 타고 고가 제품이 잇따라 등장했던 와인 소비는 최근 수요가 급감하면서 시장이 크게 축소됐다. 지난 9월 수입량은 전년 대비 19.1%, 수입액은 12% 줄었다. 연간 수입량과 금액도 2021~2022년 고점 이후 하락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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