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무리 선거용이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환경부가 식당·카페 등에서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를 철회했다. 카페에서 플라스틱 빨대, 편의점에서 비닐봉지 사용도 계도 기간을 연장해 한동안 단속하지 않기로 했다. 고물가와 고금리 상황에서 소상공인 부담을 고려했다고 하지만 정부가 일회용품 규제라는 불가피한 흐름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회용품 홍수는 환경 파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원래 24일부터 단속과 과태료 부과를 할 예정이어서 많은 업소가 이에 맞추어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행을 보름여 앞두고 돌연 백지화한 것이다. 중요한 환경 정책이 설득력 있는 설명도 없이 후퇴했다. 더구나 커피 전문점 등에서 다회용 컵 사용이 익숙해지는 시점인데 정책이 뒤집혀 그동안 이뤄진 성과도 물거품이 됐다. 환경부는 규제를 완화하면서 일회용품을 줄일 수 있는 별다른 대안도 내놓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9월에 일회용컵 보증금제도 지자체 자율에 맡기는 방식으로 사실상 폐지시켰다.
2018년 기준 연간 일회용 컵 사용량만 294억개다. 이런 일회용품을 규제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뉴질랜드는 올 7월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했다. EU는 2021년 7월부터 빨대 등 플라스틱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했고 베트남도 2025년부터 호텔이나 관광지 등에서 플라스틱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할 예정이다. 한국만 이런 국제사회 흐름에서 역행하게 됐다. 지난해 환경부가 의뢰한 여론조사에서는 “일회용품 규제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응답자가 87%에 달했다. 국민들도 좀 불편하더라도 일회용품 사용량 절감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고 실천할 준비를 하는데 정부가 모두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이번 일회용품 금지 철회는 주식 공매도 전면 금지처럼 총선용 대책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정책 권한을 쥔 정부가 그 권한을 선거에 알게 모르게 이용하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는 일이다. 전임 민주당 정권은 노골적으로 선거용 돈까지 뿌렸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정부다. 설사 총선용 정책을 펴더라도 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것이 있다. 일회용컵 금지 철회처럼 모처럼 좋은 방향으로 가는 일을 뒤집는 것은 후자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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