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남한 영화 유포자를 사형에 처한다?
북한의 모든 리(里)단위 마을에는 ‘문화회관’이 세워져 있다. 필자가 북한과 중국 국경에서 압록강 건너 촬영한 어느 마을의 문화회관 건물을 보면 ‘협동벌마다 노래와 춤으로 들썩이게’, ‘군중문화예술활동을 활발히 벌이자!’는 구호가 새겨져 있었다. 문화예술활동을 장려하는 구호만 보면 북한 주민이 이곳에서 문화 생활을 누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문화 활동이 아닌 주로 사상 교양과 정치 강습을 위한 장소로 사용된다.
한눈에 봐도 건물은 낡고 허름했다. 비단 이곳뿐만 아니라 양강도 자강도 등 북중 국경에서 바라보이는 대부분 마을의 문화회관 건물은 선전장처럼 보였다.
세계인권선언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여 예술을 향유하고 과학의 발전과 그 혜택을 공유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하지만 북한 주민의 공식적인 문화활동은 엄밀히 말해 정치동원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비공식적 문화 생활은 어떠할까. 북한 주민도 남한 영화와 드라마 음악을 보고 듣는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져 있다. 그들에게 한류 문화는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북한에 유입된 남한 미디어는 북한 내부에서 이른바 한류 현상을 일으켰다. 북한 주민이 한국 영상물 시청은 물론 한국산 제품과 패션을 따라 하며 ‘자본주의 날라리풍’이 확산하고 있다. 남한 드라마나 영화를 본 사람들은 한마디로 ‘세련되어진다’고 표현한다. 남한 영상물을 보면서 스타일을 모방하는 이른바 ‘남한 따라하기’ 현상도 나타난다. 그동안 북한 당국으로부터 사상학습을 통해 주입받은 ‘헐벗고 굶주린 남조선’이 아닌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자유가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런 생각은 ‘나는 왜 일한만큼 얻을 수 없는가’라는 반감으로 이어진다. 정권의 부속물로서 인간이 아닌 사적 욕망과 감정을 가진 하나의 주체로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자본주의 황색바람’이라며 외부 정보를 차단하고 비사회주의 행위에 대한 단속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특히, 청년세대의 교양과 사상사업을 강조하면서 외부 사조에 물들지 않도록 철저한 단속과 통제를 이어갔다. 북한 당국은 1990년대 사회주의국가의 붕괴를 “청년들이 자본주의사상 독소에 오염된 데로부터 초래된 필연적 결과”로 본다.
북한당국은 남한 한류를 비롯해 일체의 외래문화 유입을 ‘제국주의 사상문화 침투’로 간주하고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북한 내부로 유입되는 원천을 차단하기 위해 북중 국경지역의 단속과 통제는 더욱 강화됐다. 북한 당국의 외부 사조 유입 단속은 이제 강력한 법적 조치로 이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다. 괴뢰(남한) 영상물 유포자를 사형에 처하고 시청자는 최대 징역 15년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또 새 세대에서 나타나는 반사회주의 사상을 제거하고 자본주의 문화에 익숙해진 청년의 사상 개조를 위한 ‘청년교양보장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 주민의 남한에 대한 호기심과 외부 정보에 접근하고자 하는 욕망은 북한 당국의 통제에도 계속 확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USB나 마이크로 SD카드 등 소형화된 저장장치로 담아 유통되기 때문에 단속도 쉽지 않다.
분명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외부 정보는 북한 체제를 변화시킬 ‘트로이의 목마’가 될 것이다. 북한 주민의 알권리라는 인류 보편적 인권의 개념을 기반으로 대북정보 유입을 위한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남한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유포하면 사형에 처한다는 그곳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문화 콘텐츠라는 소프트 파워를 통해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는 전략이 필요하다. 김정은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이 외부 세계를 볼 수 있도록 그들의 눈과 귀를 열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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