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내 마음속의 동물원

김재원 동화작가 2023. 11. 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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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동화작가

진양호 동물원은 가을빛으로 곱게 물들고 있었다. 진양호 물빛 둘레길을 걸으려고 갔다가 한 바퀴 둘러보았다. 어른 입장료가 고작 1000원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들이 많았다. 네 살쯤 먹은 아이가 프레리도그를 보면서 쿡쿡 웃었다.

호랑이 불곰 물개 타조 등을 보니 문득 옛 생각이 났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동래 동물원은 부산 시민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나 역시 해마다 몇 번은 찾아갔다.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이라 아이들과 같이 갔다. 소풍 장소로는 최적이었다. 아이들이 동물을 무척 좋아했고 넓은 공터가 있어서 달리기나 장기 자랑을 하기에 편했다.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인데 문을 닫아서 아쉽다. 그 대신에 실내 동물원이 세 군데나 생겨서 성업 중이라니 다행스럽다. 사실 철창 안에 가둬 두고 관람만 시키는 동물원보다는 먹이를 주고 만져볼 수 있는 곳이 더 바람직하다.

나는 주택에 살 때 온갖 동물을 키웠다. 개 오골계 닭을 비롯하여 다람쥐, 실험용 흰쥐, 햄스터에다 십자매 문조 열대어 청거북 메뚜기 누에나방 장수풍뎅이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한 번은 다람쥐가 사육장에서 탈출하여 벽을 타고 천장까지 올라가는 바람에 붙잡느라 식겁한 일이 있었다. 그날 다람쥐를 붙잡느라 진땀을 뺀 아내가 잔소리 폭탄을 퍼부었다. “여봇, 도대체 뭐 하는 짓이에요? 사다 놓고 관리는 뒷전이니 뒤치다꺼리하느라 신물이 난단 말이에요.” 아내가 화를 낼만 했다. 동물을 사다 놓고 좋아만 했을 뿐 출근하고 나서 퇴근할 때까지 뒷정리는 언제나 아내 몫이었으니까. 또 언젠가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메뚜기를 키웠는데 외출했다 돌아와 보니 다 죽어 있었다. 소독하는 날이라 누가 와서 약을 쳤다나. 아내 바가지에다 그런 일까지 겪은 뒤부터 슬슬 동물 키우는 것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내가 동물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늦둥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형들과는 나이 차가 많아서 어울리기 힘들었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친구가 많지 않았다. 그때 집에서 개를 키웠는데 학교 갔다 돌아오면 열렬하게 반겨주었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해서 밖으로 돌고, 어머니는 장사하느라 늦게 돌아왔다. 나는 늘 개하고 놀았다. 개가 친구요, 게임기였으며, 부작용 없는 신경안정제였다.

그런데 정이 들 무렵이면 어머니가 개를 팔아버렸다. 알고 보니 개를 좋아해서 키운 것이 아니라 잔반을 먹여 푼돈이라도 벌 목적이었다. 나는 정든 개와 생이별을 하고 한없이 울다가 어른이 되면 죽을 때까지 키우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동물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아내가 반대를 하니 난감했다. 궁리 끝에 밀양에 시골집을 하나 사서 진이(진돗개 잡종)를 키웠다. 주말마다 찾아가서 진이를 보는 것이 큰 낙이었다. 높은 산을 오를 때는 진이가 수호신처럼 앞장섰고, 장날에 차를 타고 나가기라도 하면 어디까지라도 좇아왔다. 하도 안쓰러워서 멀리 갈 때는 꼭 줄을 묶어 놓곤 했다.

진이는 밥만 잘 챙겨주면 더 바라는 것이 없었다. 장난감이나 용돈을 요구한 적이 없고 놀이공원이나 해외여행 보내달라고 떼를 쓰지도 않았다. 어쩌다 바깥 산책이라도 한 번 시켜주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외출했다가 들어가면 어린 시절의 개들처럼 펄쩍펄쩍 뛰며 반겨주었다. 비 오는 날이 제일 곤혹스러웠다. 흙 묻은 발로 뛰어오르면 피하느라 바빴다. 세 아이를 키웠지만 진이만큼 나를 반겨주지는 않았다. 어떤 날은 놀잇감에 푹 빠져 아빠가 온 줄도 모르고 있었으니….

돌이켜 보면 내가 사회성이 부족한 데다 정을 줄 곳이 없어서 유독 개를 좋아했던 것 같다. 사람은 나이가 많든 적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야 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 정서가 불안하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엉뚱한 쪽으로 빗나갈 수 있다. 마약이나 도박, 알코올 중독, 게임 중독 등이 모두 정서 불안에서 싹이 튼 독버섯들이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시련을 많이 겪으면서도 빗나가지 않은 것은 동물과 교감하며 사랑을 주고받은 덕분이다. 지금은 동물을 안 키우지만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다양한 동물들이 활발하게 뛰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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