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낙엽 엽서
가을이 깊다. 들판도 걷히고 신작로의 플라타너스도 커다란 잎을 떨군다. 낙엽이 흩날리면 가슴 한쪽에 구멍이 뚫린 듯 휑하다. 그래도 풍요한 건 이삭 같은 작은 결실을 차곡히 담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가을은 노을 색이다. 너와 다른 나만의 계절이 사용한 시간의 무늬가 저물기 때문이다. 단풍의 으뜸은 감잎이 아닐까 한다.
노랑 주황 빨강 갈색으로 이어지는 감잎 색은 수채화처럼 고르게 번져 흐른다. 감잎엔 오래된 책갈피나 책상 서랍 속처럼 묵은 향기가 있다. 나의 조그만 서재에도 향기가 깊다. 어릴 적 읽은 단행본 고전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지니고 빼곡히 기대어 있기 때문이다.
시골집 나의 방에서 옮겨온 50년 이상 된 향기 있는 책들이다. 꿈을 주던 책들은 나의 청춘을 고스란히 담아 책갈피의 단풍잎까지 긴 세월 함께 덮여 있다. 그 속엔 간혹 대처로 간 누이동생의 편지도 있고 국어 선생님께서 보내온 엽서도 들어있다.
추억은 가을 길을 걷는다.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이나 비탈리의 샤콘느 같은 우수 어린 바이올린의 선율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올해도 여성회관 뒤뜰에서 낙엽을 그린다. 가을 엽서처럼. 모두가 저마다의 고운 색을 스케치북에 입힌다.
여성스럽고 정숙한 김명숙님이 잘 익은 낙엽을 모아 놓고 수채화 물감을 풀었다. 그녀의 여고 시절처럼 먼 가을 엽서를 다시 쓰고 있는 느낌이다. 올가을도 다 읽은 책처럼 덮어야 한다. 가을은 아름답다. 헤어지는 사람의 뒷모습처럼, 다시 만나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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