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어느 순간, 낯선 감각이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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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가는 날.
이른바 '일상성'으로 한국화단의 신선한 움직임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상성'은 단순히 일상의 모습을 표현하는 차원이 아니다.
오히려 일상의 독특한 순간에 느끼는 낯선 감각, 여기서 이어지는 정신적 깨달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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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 창문 이사 등 연작들 선보여
여러겹 배접한 종이에 철솔 작업
‘분수’, ‘창문’, ‘이사’ 등 유근택의 주요 연작 40여 점을 선보이는 개인전 ‘반영’이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유근택은 전통 수묵화가 추구했던 관념적 정신성을 벗어나 삶의 장면에서 포착한 감각의 정신성을 드러내 왔다. 이른바 ‘일상성’으로 한국화단의 신선한 움직임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상성’은 단순히 일상의 모습을 표현하는 차원이 아니다. 오히려 일상의 독특한 순간에 느끼는 낯선 감각, 여기서 이어지는 정신적 깨달음을 말한다. 깨달음은 저 먼 곳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몸, 발 디딘 땅에서 출발한다는 의미다.
이런 관점에서 갤러리 1층에서 만나는 ‘창문’과 ‘이사’ 연작은 작가가 거주하는 집에서 만나는 순간들을 표현했다. 2022년 작품 ‘창문-새벽’은 부친의 장례식을 치른 뒤 집으로 돌아와 본 창밖 풍경을 담았다. 유근택은 “별빛과 불빛이 합쳐진 풍경이 일상적이지만 너무나 놀랍게 다가와 홀린 듯 그렸다”고 말했다.
2층에 전시된 ‘세상의 시작’은 만물의 근원인 땅이 갖는 “두더지 게임처럼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생명력을 표현했다. 그림 속 땅 위에는 식물뿐 아니라 선풍기, 세면기, 변기 등 각종 생활 집기가 솟아난다. 인간 문명이 만든 온갖 물건들도 결국에는 스러져 흙으로 돌아가고, 그 흙에서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과정을 돌아보게 한다.
한지 위에 수묵화를 그리는 작가가 여러 겹 배접한 종이를 물에 흠뻑 적신 다음 철솔로 밀어내며 작업한 흔적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작가는 “종이의 물성 자체가 시각 언어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고 설명한다. 한지를 몸과 그림이 만나는 무대로, 철솔질은 몸의 감각을 구현하는 통로로 본 것이다. 12월 3일까지.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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