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철의 딜 막전막후] '고무줄 공모가'의 비밀
▶마켓인사이트 11월 7일 오후 4시 11분
기업공개(IPO) 과정에선 두 차례의 청약을 거쳐야 한다. 먼저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한 뒤 일반투자자 청약을 받는다. 기관 청약을 수요예측이라고 한다. 투자 전문가들에게 신규 상장 기업의 공모가격을 결정하도록 하는 절차다. 공모주 투자자는 수요예측 흥행 여부를 면밀하게 살펴본다. 하지만 실제 수요예측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지난달 말 에코프로머티리얼즈의 수요예측을 앞두고 분위기는 암울했다. 뜨거웠던 2차전지 관련주가 돌연 동반 급락세로 돌아서면서다. 그런데 수요예측 첫날 중소형 기관들이 희망 공모가 상단 이상 가격에 주문을 쏟아냈다. 시장 분위기가 가라앉았어도 양극재의 핵심 소재를 만드는 에코프로머티리얼즈의 미래 청사진이 높이 평가받는다는 해석이 나왔다.
수요예측 마지막 날 분위기는 돌변했다. 높은 가격에 주문을 낸 중소형 기관들이 공모가 하단 밑으로 가격을 대폭 조정했다. 국내외 대형 기관들이 움직이지 않자 앞다퉈 주문 수정을 요청한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 주말 공매도 금지 조치로 2차전지주가 일제히 급등하면서 분위기가 또 한 번 바뀌었다. 회사는 희망 공모가인 3만6200~4만4000원의 하단을 가까스로 지켜낼 수 있었다.
수요예측 알고 보면 '눈치게임'
중소형 기관들의 ‘눈치게임’에 휘둘려 공모가가 고무줄처럼 오락가락한다. 실제 기업가치 평가 능력은 없으면서 공모주 단타 매매에만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대형 기관이 비교적 높은 가격을 써내면 굳이 비용을 들여 자체적으로 기업가치를 산출하기보다는 좀 더 많은 물량을 배정받기 위해 더 높은 가격으로 써내는 것이 유리한 전략이다. 반대의 경우엔 최저가격을 써내면 된다. 일종의 무임승차다. 이들에게 적정 기업가치는 중요하지 않다.
한국 공모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다.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2019년 자산운용사 설립 요건 중 자기자본 기준이 완화돼 운용사와 자문사 등 중소형 기관이 난립하면서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공모주 수익률이 치솟으면서 이런 행태가 만연해졌다. 한 증권사 IPO 부서 관계자는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1800개에 가까운 국내 기관 중 실질적인 전문 투자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코너스톤에 '형평성' 잣대 곤란
작년 1월 LG에너지솔루션 IPO 이후 불거진 허수성 청약 역시 대부분 이런 중소형 기관에서부터 야기된 문제다. 금융당국은 주관사에 주금 납입 능력 확인을 의무화했다. 실제 능력을 초과해 수요예측에 참가한 기관을 불성실 수요예측 참여자로 지정해 최대 1년간 수요예측 참여를 제한하거나 제재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실효성은 의문이다. 이전에도 공모주 펀드 가입자의 피해가 우려된다며 수요예측 참여를 제한하기보다는 미미한 제재금만 부과하는 사례가 많았다.
수요예측의 가격 발견 기능을 정상화하려면 지나치게 형평성을 강조하는 규제 틀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공모주 관련 규제는 모두가 공평하게 공모주 수익률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기조 아래 형평성을 강조한다. 주관사인 증권사는 대형 기관뿐 아니라 중소형 기관에도 의무적으로 일정 비중의 공모주를 배정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중소형 기관의 주문에도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투자은행업계에선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 도입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는 IPO 증권신고서 제출 이전에 장기 보호예수 등의 조건을 확약한 기관투자가에 공모주 일부를 사전 배정하는 제도다. 국회 입법 과정에서 사전에 공모주 물량을 확보하는 코너스톤 투자자와 나중에 청약 물량을 받는 일반 투자자 간 형평성 논란을 제기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적정 기업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는 건 형평성보다 실효성이 훨씬 중요한 영역이다. 공모주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공모시장이 또다시 형평성이란 정치 논리에 가로막히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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