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눈] 새삼 다시 ‘맹자’를 떠올리다
얼마 전 문득 학창 시절 배웠던 ‘맹자’의 ‘사냥터’ 이야기가 떠올랐다. 제자들이 맹자가 남긴 말을 기록했다고 알려진 ‘맹자’의 ‘양혜왕’ 편에 소개된 이야기는 이러하다.
제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주나라 문왕의 동산은 사방 70리였다고 하는데 백성들이 오히려 작다고 여기고, 과인의 동산은 사방 40리에 불과한데도 백성들이 오히려 크다고 여기는 까닭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맹자는 “문왕의 동산은 사방 70리였지만 꼴 베고 나무하는 자들도, 꿩 잡고 토끼 쫓는 자들도 백성과 함께 이용하였으니, 백성들이 동산을 작다고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들으니, 교외 관문 안에 사방 40리가 되는 동산이 있는데, 동산의 고라니나 사슴을 죽이는 자를 살인죄와 마찬가지로 다스린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나라 가운데에 사방 40리가 되는 함정을 만들어 놓은 것이니, 백성들이 그 동산을 크다고 여기는 것 또한 당연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답했다.
맹자는 제선왕이 자신을 위해 사냥터를 만들어 혼자 이용하며 백성들을 가혹하게 다스렸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반면 제선왕보다 넓은 사냥터를 가졌던 주나라 문왕은 자신의 사냥터를 백성들과 함께 이용했다. 이에 따라 백성들은 제선왕의 사냥터는 작아도 크다고 생각한 것이고, 주나라 문왕의 사냥터는 커도 백성들은 작다고 말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백성을 외면한 제선왕은 작은 동산을 갖고 있음에도 늘 근심이 끊이지 않았고, 백성과 함께 누린 주나라 문왕은 큰 동산을 가졌지만 전혀 근심이 없었다는 일화다.
여기서 시작된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한다’는 뜻의 ‘여민동락(與民同樂)’이라는 말은 지금도 정치의 본질을 얘기할 때 자주 회자된다. 하지만 기자가 ‘맹자’의 ‘여민동락’이나 ‘사냥터’를 머리에 떠올린 것은 어느 한 정치인이나 정치적 사안 때문이 아니라, 최근 ‘서핑’으로 ‘힙’해진 양양군 현남면 바닷가 주민들을 만나면서부터다.
현남면에서도 남애4리 속칭 ‘미륭마을’ 주민들은 수십 년, 또는 조상 대대로 마을을 지키며 살아왔음에도 대부분 살고 있는 집터가 본인들의 땅이 아니다. ‘미륭마을’이라는 이름도 지금은 유명 대기업이 된 한 건설회사의 전신인 ‘미륭건설’이라는 사명을 차용해 붙여진 이름이다. 주민 등에 따르면 미륭건설은 지난 1975년 무렵, 당시 부의장까지 지낸 강원도 영동지역 출신인 한 유력 국회의원이 양양 남애항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관광지 개발사업을 명목으로 이 일대 토지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남애항 인근 바닷가를 중심으로 토지 매입에 나선 미륭건설은 땅을 팔아 집이 없어진 주민들을 이주시킬 목적으로 국도 7호선 건너편에 ‘미륭마을’이라는 택지를 조성했다. 당시 미륭마을로 삶의 터전을 옮긴 주민은 모두 60여 가구로 알려져 있다. 미륭마을의 토지는 지금도 해당 기업 소유로, 당시에 이주한 주민들은 지금까지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재산권 행사는 물론, 집을 새로 짓거나 수리할 수조차 없는 불편한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주민들이 기업 측에 토지 매각을 요구해 오고 있으나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륭마을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이 기업은 지난해 양양군 현남면 광진리 일대에 국내 최대 규모의 오션파크(해양공원)를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큰 관심을 모았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해당 기업은 광진리 일대 9만 5867㎡(2만 9000평)에 친환경 오션파크를 조성, 연간 10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업계획 부지에 해당 기업이 확보한 땅은 고작 16.9%에 불과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국공유지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주민들은 “사업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국공유지를 저가에 매수하려는 ‘꼼수’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며 최근 ‘해당 기업은 지역을 떠나라!’는 등의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주민들이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대기업이 그동안 지역과 주민들을 외면해 왔다는데 그 원인이 있다. 그 옛날 맹자는 민심을 잃으면 왕의 자격도 상실된다는 점을 충고했다. 맹자의 말처럼 사냥터가 좁아도 백성과 함께 하지 않으면 원성이 커지지만, 사냥터가 제 아무리 넓어도 백성과 함께 하면 칭송이 자자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여민동락’이 정치의 핵심이라지만, 기업이나 행정 또한 다를 바 없다. 주민과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즐거움과 슬픔도 주민과 같이 한다면 ‘사냥터’ 크기 따위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새삼 다시 ‘맹자’를 떠올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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