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 바라며 10년 가꿨더니… ‘범죄 온상’ 변질한 日태양광시설 [방구석 도쿄통신]
한국은 일본을 너무 모르고, 일본은 한국을 너무 잘 안다.
일본 내면 풍경, 살림, 2014
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일본에서 태양광 에너지 시설이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건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이후입니다. 당시 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나자 재생 에너지에 대한 필요 인식이 높아졌고, 정부도 ‘고정가격 매입제도(신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사들이는 것)’를 도입하는 등 태양광 발전을 국민들에게 독려했죠.
그로부터 10여 년 지난 가운데, 최근 일본 각지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시설들이 절도범의 표적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일본 이바라키현 오미타마시에 있는 한 태양광 발전 시설에는 새벽 4시쯤, 네 명 이상의 절도 단체가 침입해 구리로 만들어진 송전용 케이블을 훔쳤습니다. 이들이 도난한 케이블 총 길이 600m쯤으로, 업체가 입은 피해액은 400만엔(약 3500만원)에 육박했다죠.
지난 7월에는 이바라키·도치기 등에서 태양광 시설을 돌아다니며 케이블을 훔친 캄보디아인 범죄 일당(5명)이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이들은 경찰에 “훔친 케이블을 업자들에게 팔았다”며, “태양광 발전소는 경비가 허술해 침입하기 쉽고 케이블도 운반하기 간편해 (표적으로) 노렸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최근 일본에서는 도호쿠(東北·동북), 간토(関東·관동), 도카이(東海·동해) 지방을 중심으로 구리 케이블을 노린 태양광 발전소 절도 사례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불과 4개월 동안에만 이바라키·도치기·군마·사이타마·지바 등에서 76건의 피해가 접수됐죠. 피해 총액은 2억7000만엔(약 24억원)에 이릅니다. 도난된 케이블 총 길이는 약 81㎞. 도쿄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 횡단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몹니다.
이바라키현에선 특히 올 들어 886건의 관련 피해가 접수됐다는데요. 이바라키현에 들어서 있는 태양광 시설 수(242곳)보다도 3배 이상 많은 수치입니다. 평균으로 따지면 한 곳당 3번씩은 당했다는 거죠. 이들 지역뿐 아니라, 전국에서도 “매일 최소 1건씩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일본 경찰이 NHK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일본 매체들은 최근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침체됐던 경제가 서서히 회복, 구리 가격이 덩달아 오르면서 이 같은 범죄가 늘어났다고 분석합니다. 실제로 라쿠텐증권경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2020년 3월 4951달러(약 640만원)였던 1톤당 구리 세계 평균가는 지난 9월에 8292.5달러(약 1100만원)로 1.7배 뛰었죠.
업자들 피해와 별개로, 태양광 발전 사업체들과 계약을 맺은 손해보험사들까지 머리가 지끈해지고 있습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달 일본 대형 손보사 4곳을 인용해, 2022년 관련 피해 건수가 2300건가량으로 5년 새 5배나 뛰었다고 보도했는데요. 도난으로 인한 보험금 지급액은 126억엔(약 1100억원)으로, 2021년의 3배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도쿄의 한 손해보험사는 올 들어 4~8월에만 태양광 발전소 도난 사건으로 인한 보험금 지급 건수가 작년 한 해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고 NHK는 전했습니다. 이 때문에 태양광 시설 관련 보험을 다루는 업체 상당수가 적자를 보고 있고, 보험료 단가는 올 들어서 20~30%씩 솟구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일본 대형 손보사 중 한 곳인 ‘손보재팬’ 관계자는 NHK에 “태양광 업체들과의 계약은 주로 자연재해나 시설 고장에 대비하는 차원이었는데, 최근 예상치 못하게 도난 사건이 급증하니 그동안 받아 온 보험료보다 지불할 보험금이 많아졌다”고 울상을 지었습니다. 앞서 일본 각지에 태양광 설치가 본격화하고 10년쯤 지났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당시 우후죽순 설치된 패널·케이블 등이 노후화하면서 수리를 위한 보험금 지불도 늘어나는 시기라, 손보사들의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합니다.
태양광 업체들은 절도를 방지하려 CCTV, 침입 감지 센서 등 방범 강화를 위해 1000만엔 이상씩을 쏟고 있다고 NHK가 전했습니다. 도난 피해가 계속 늘어나다간 보험 대상에서 제외돼버릴 것을 우려한 조치죠. 일부 사업주는 인건비로 인한 당분간의 적자를 무릅쓰고도 24시간 상주하는 사설 경비원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이바라키현 등 지역들은 관내 금속 재활용 업체들에 도난된 물품을 사들이지 않도록 당부에 나섰는데요. 절도범이라고 겉보기에 표나는 게 아니니, 재활용 업체도 난처한 노릇입니다. 경찰들은 “거래 상대 본인 확인과 장부 기재 절차를 강화해달라”고 협조를 구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훔친 물품이란 게 확인되면 역추적이라도 가능하게끔 도와달란 것이죠.
NHK는 전력 회사 관계자들을 인용해 “태양광 시설에서 도난 사건이 늘어나면 재생 에너지 보급을 방해하고,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보급 체계에도 차질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업자 개개인들의 피해가 아닌, 일본을 지탱하는 에너지 인프라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거죠.
특히 일본 정부는 재생 가능 에너지 정책을 통해 오는 2030년까지 태양광 발전의 전력 구성 비율을 현재의 2배 수준으로 늘리겠단 계획입니다. 전문가들은 “도난 사태를 하루빨리 막아낼 실효성 있는 대책을 꾸려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습니다.
11월 8일 열두 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보급이 본격화하고 10년 여 지난 일본 태양광 시설이 범죄의 표적이 되어가는 실정을 다뤄보았습니다. 다음 주에도 일본에서 핫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0~11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과거사 의견 분분하지만, 젊은층 미래로 나아가야”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3/10/28/5Y4D4XBZ6BG6JNY5PVITGLUEIQ/
“꾸밈없는 내 모습 사랑해줘” SNS로 발산하는 日대학생들 외침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3/11/01/C7IJ6A7PVJDH7C3ZNFNB5RGOE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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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 수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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