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이준석과 인요한 '갈등', 문재인과 안철수 데자뷔?
이준석 '신당 창당' 가능성…인요한은 여전히 '만나자'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 '혁신' 경쟁이 뜨거웠던 때가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혁신 경쟁'을 연출했다. '혁신'을 놓고 문 대표와 안 전 대표는 줄다리기를 했고, 두 사람은 끝내 이별했다. 그런데 정치권에선 아직도 당시 안 전 대표가 주장한 '혁신'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혁신(革新, Innovation), 이는 정치권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묵은 풍속이나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혁신은 정치권에서 주로 선거를 전후로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계파간 갈등이 첨예할 때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어가 바로 '혁신'이다.
각 정당은 뼈를 깎는 혁신을 공언한다. 그 과정은 언제나 신경질적이고 갈등의 단초가 됐으며, 이탈자가 생겼다. 국민도 정치권의 '혁신' 공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이 '혁신'을 이야기할 때면 주목한다. 혹시나 이번에는 진짜 변할까하는 기대감으로 말이다. 결과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임에도.
2024년 4월 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5개월 앞둔 현재의 여야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푸른 눈의 한국인 인요한 교수를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하고 당 체질 개선에 나섰다. 통합을 내세운 대사면과 이른바 '반윤'(반 윤석열) 끌어안기, 영남 중진과 윤핵관 등의 험지 출마 및 불출마 등을 종용하고 나섰다. 역시나 이번에도 긍·부정의 반응이 동시에 나왔다. 여당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관련 논쟁이 뜨겁다. 그래도 일단 여론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여당엔 긍정적이란 시각이 나온다.
정치 9단이라는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지난 1일 "인요한 위원장의 광폭 행보, 대통령 시정연설, 김포 광명 구리 하남 등 서울편입 등등 모든 언론에서 민주당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정부 여당이 도배하고 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민주당의 모습에 안타깝기만 합니다"라고 여론 쏠림을 예의주시했다.
혁신위가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재미있는 장면도 나온다. 재미라는 단어가 어울리진 않는 것 같다. 눈과 귀를 끄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인 위원장의 모습이다. 인 위원장은 지난 4일 이 전 대표가 이언주 전 의원과 부산 경성대에서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를 주제로 토크 콘서트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사전 조율 없이 부산을 찾았다. 객석 맨 앞자리에 앉아 혹시나 대면하는 자리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지만, 독대는 없었다.
이 전 대표는 그동안 인 위원장의 혁신안을 비판했고, 만남 요청을 완강히 거절해 왔다. 지난 4일엔 관객석에 앉은 인 위원장을 향해 영어로 자신 의사를 보다 명확하게 전달했다.
"미스터 린튼. 여기서 내가 환자인가. 오늘 이 자리에 의사로 왔나. 진짜 환자는 서울에 있다. 가서 그와 이야기하라. 그는 도움이 필요하다. 언젠가 반드시 당신과 내가 공통된 의견에 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당신은 오늘 이 자리에 올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무엇을 배웠나. 강서 지역민들과 대화하고자 노력해 봤나. 그들은 분노하고 있다. 모든 해답은 그들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의 언어를 따르고, 갈등을 조장하려 하지 않는다면 기꺼이 대화할 의사가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자격이 없다."
인 위원장은 웃으며 "경청하러 왔다"고 했다. 이틀 후 인 위원장은 "이준석이라는 사람이 저한테 영어를 했다. 엄청 섭섭했다"며 "그렇게 계속 다르게 '너는 외국인'이라고 취급하니 힘이 들었고 섭섭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두 사람의 장면은 글의 처음에 밝힌 것처럼 8년 전 '혁신'을 놓고 다투던 문 대표와 안 전 대표의 행동과 무척 닮은 것처럼 보인다. 당시 안 전 대표는 문 대표가 내놓은 혁신은 혁신이 아니라고 줄곧 비판했다. 안 전 대표는 문 대표에게 '혁신 전당대회'를 제안했지만, 거부당했다.
두 사람 간 갈등의 골은 깊어졌고, 문 대표는 2015년 12월 13일 안 전 대표의 집을 찾았지만, 회동은 불발됐다. 문 대표는 그날 새벽 안 전 대표 자택 현관 밖에서 30분을 기다렸지만,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다시 만나시죠"라는 말을 들었다. 문 대표를 돌려보낸 안 전 대표는 같은 날 오전 11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당을 선언했고, 이후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만나서 대화로 혁신이든 당의 체질 개선이든 고쳐나가자는 인 위원장. 반면 이 전 대표는 "혁신의 대상이 서울에 있다는 당연한 말을 인정하지 못하고 아무리 다른 이야기를 해봐야 승리는 요원하고 시간만 흘러갈 뿐입니다. 환자를 외면하고 엉뚱한 사람에게 약을 먹일 생각 그만하십시오. 억지봉합쇼라도 한다고 18개월간의 실정이 가리워집니까"라고 거듭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했다.
현재 상황이 급변하지 않는 이상 이 전 대표의 12월 신당 창당은 기정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이 전 의원은 안철수 의원과 비교되는 것이 싫겠지만, 흘러가는 모양새를 보면 유사하다는 생각이 잘 지워지지 않는다. 인 위원장의 혁신이 새롭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지극히 평범한 여의도 문법이라는 데 정치권도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이 전 대표의 현재 태도도 신선한 것 같지만, 너무 자주 같은 모습을 본 탓에 선도가 많이 떨어진 듯하다. 집안싸움 같기도 한 인 위원장과 이 전 대표 간 결론은 무엇일까. 이미 정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지난한 집안싸움을 국민이 더 보는 수고를 덜어주는 게 '정치 혁신'에 더 가깝지 않을까.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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