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만 처벌하는 ‘그놈의 군형법’ 또또또또 합헌
[기승전21]
7년이 흘렀다. 희망을만드는법(희망법) 소속 한가람 변호사는 2016년 당시 군형법이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이 나왔을 때도 <한겨레21>과 인터뷰했다. 2016년 8월에 나온 기사 ‘평등에 대한 모독’(제1126호)은 그의 조언 없이는 쓰기 어려웠다. 2023년 10월26일 군형법 제92조의6 ‘군형법상 추행죄’에 대한 헌재의 결정이 다시 나왔고, 변호인단으로 애써온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벌써 네 번째 합헌. 위헌 의견이 그나마 2002년 2명, 2011년 3명, 2016년 4명으로 결정이 나올 때마다 한 명씩 늘었으나 이번에는 4명으로 제자리걸음을 했다. 유엔 등 국제사회가 성소수자 군인만 처벌하는 이 조항에 대해 숱하게 폐지를 권고하고, 한국 시민사회도 끈질기게 위헌을 위해 노력했다.
—대학 시절부터 독자였다가 <한겨레21>과 첫 필자로 인연을 맺은 것도 ‘그놈의 군형법’ 때문인 것으로 안다.
“2008년 ‘인권 OTL-숨은 인권 찾기’ 연재에 오가람이라는 활동명으로 기고하며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당시 대법원이 군형법상 추행죄 판결을 내리면서 동성 간 성행위를 ‘객관적으로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성적 도덕관념에 반한다’고 판결했을 때다. 대법원은 2022년 ‘동성애는 자연스러운 성적지향의 하나’라면서, 2008년의 판결을 더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전원합의체 판결로 입장을 마침내 바꿨다. 이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직후 그 의미를 <한겨레>에 기고했는데 기분이 좋았다. <한겨레21>이 초창기부터 군형법 추행죄 문제를 잘 다뤄준 덕분에 이룬 변화라고 생각한다.”
—헌재 결정문을 읽으면서 ‘이게 무슨 소리야’ 싶은 부분이 적잖다.
“이번 헌재 결정의 다수의견은 ‘여군이 많이 늘었지만 혈기 왕성한 젊은 남성 병사가 다수인 한국 군대에서, 동성 간에는 성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별로 없는 현실하에 남성 군인들에게 성적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부담을 줘서는 안 되므로, 남성 간 성접촉을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젊은 남성들은 혈기 왕성해서 성적 행위를 하니 형사처벌로 이를 통제해야 한다고 하는 점에서 남성혐오적이고, 이성 간과 달리 동성 간 성적 대상이 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봄으로써 동성애혐오적이며, 성적 대상이 되는 것이 남군에게는 큰 부담이라 하면서도 여군에겐 문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차별적이다.”
—대법원이 2022년 ‘사적 공간에서 관계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해석한 부분을 결정문에 자주 언급했다.
“대법원 결정을 합헌의 핑계로 삼고 있다. 민주화 이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서로 경쟁하면서 시민의 기본권을 확장해왔다. 이번 헌재 결정문은 오히려 반대다. ‘대법원이 이만큼 했으니 우리는 모른다’는 것이다. 헌법의 민주주의 원칙에도 배치된다.”
—유남석 소장이 이끄는 헌재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병역거부자 처벌 조항 한정위헌 결정이 나왔다. 기대가 있지 않았나 싶은데.
“이번에 퇴임하는 유남석 소장까지 5명이나 합헌으로 판단했는데, 이번 결정은 ‘역대급’으로 문제투성이다. 불합리한 차별적 내용을 근거로 차별을 정당화하다보니, 실소가 나온다. 헌법 최고 해석기관의 결정이라고 설명하기도 어이없을 정도다. 외국에도 이 결정을 전해야 하는데, 부끄러움은 왜 또 우리 몫인가 싶다.”
—지난 10년을 이 조항의 폐지를 위해 노력해온 것으로 안다. 앞으로 계획은.
“헌법재판소나 국회, 정부 대응 같은 법과 제도의 변화를 위한 ‘공중전'에 너무 오래 몰두해왔던 것 같다. 보람도 있고 법적 근거를 잘 쌓아왔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나와 잘 맞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동안은 더 구체적인 사안을 다루는 일을 중심으로 하고 싶다.”
—대학 시절부터 오랜 독자로, <한겨레21>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뉴스레터 ‘썸싱21’의 애독자다. 읽기도 편하고 기사 큐레이션(추천)도 좋아 거의 모든 기사를 열독하고 있다. 부디 제92조의6이 폐지될 때까지 관심을 가져달라.”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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