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카, 전쟁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동아광장/김금희]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2023. 11. 7.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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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전쟁 소식, 일상이 무기력한 낙담에 빠져
인간의 ‘우애’에 희망 거는 최근 두 영화 인상적
‘전쟁’에 무감해지기보다 각성하며 살아냈으면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지난달 개최된 서울동물영화제 개막작은 우크라이나 영화감독 스타니슬라프 카프랄로프의 다큐멘터리 ‘니카를 찾아서’였다. 피란길에 잃어버린 반려견 니카를 찾기 위해 키이우로 돌아간 감독의 실제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다. 여전히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는 적군과 아군, 원주민과 이방인들이 적대적 노선 속에 대립하고 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파괴된 자동차와 건물, 계속되는 공습 사이렌 속에서도 감독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형제를 찾아 위험을 무릅쓴다. 그리고 경쟁적으로 전해지는 뉴스 보도 속에는 정작 빠져 있던 ‘남은 자’들의 눈물겨운 연대와 조우하게 된다.

배우인 알렉스는 도시에 남겨진 고양이들을 구조하고 있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를 공포 속에 데리고 나가느니 집에 두는 편이 안전하리라 여긴 많은 사람이 남겨둔 반려묘들이다. 하지만 전쟁은 장기화되었고 이제 알렉스는 그들의 요청을 받고 집으로 가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운 좋게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집이 있는가 하면, 대문을 부수어야 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아무 대가도 없는 그 일을 알렉스는 “평소라면 위법이지만 지금은 전쟁이니까” 하고 자조하며 기꺼이 해낸다. 그렇게 들어간 빈집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고양이들을 구해내는 장면은 전쟁의 비극을 잠시 잊을 수 있게 하지만, 이미 굶어 죽은 고양이들과 맞닥뜨릴 때면 죄 없이 죽어야 하는 가엾은 생명들에 대한 죄책감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알렉스는 죽은 고양이에게 작은 담요를 덮어주며 “세상으로부터 감싸주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건 이 영화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대목이 되었다.

아침 공기를 마시며 자리에서 일어나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일터로 나가고 퇴근 후에는 인간과 비인간동물 모두가 어울리며 ‘살던’ 세상은 한순간에 더 많이 더 빨리 서로의 죽음을 겨눠야 하는 지옥으로 바뀌었고, 그런 세상에서는 한 장의 담요와 바로 죽음이 더 큰 평안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전쟁은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는 불행이다. 어떤 거창한 승전보도 결국 잃어버린 생명의 가치를 대신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의 폭격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상황에서 동물원 동물들을 대피시키려는 이들의 노력도 영화에는 담겨 있다. 그들은 특별히 담대하거나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이기에 동물원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다. 한 수의사는 동물들의 고통을 가장 잘 아는 것이 수의사이기에 견딜 뿐 너무 두렵다며 울먹이면서도 자기 자리를 지켜낸다. 부족한 수면제로 맹수를 마취해 재빨리 이동 트럭에 넣고 다른 동물들도 옮기려는 순간, 공습이 시작되고 ‘니카를 찾아서’의 감독 또한 부상을 당해 촬영은 중지된다. 이후의 이야기는 영화로 확인해줬으면 좋겠다.

인간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지옥 속에서도 인간은 물론 비인간동물의 생명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그런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의 손쉬운 절망을 막아서는 보루가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여정이 니카라는 개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말이다.

지금 우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일어난 또 다른 전쟁을 목도하고 있다. 이렇게 상시적으로 전쟁 소식을 듣는 상황은 일상을 무기력한 낙담 속으로 밀어 넣는 듯 느껴진다. 이런 오늘의 현실을 예견했을까?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최근 개봉된 그의 마지막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인간의 그런 지점을 짚어낸다. ‘전쟁’에 대한 성찰 없이 마비된 감각으로 살아가는 군중이 얼마나 기이한 폭력으로 빠져들 수 있는가를 말이다.

‘니카를 찾아서’와 달리 이 영화에서는 두꺼비와 앵무새 같은 동물들이 전쟁을 수행하는 파시즘적 군중으로 비유돼 등장하는데, 어쩌면 그건 주인공 마히토의 말처럼 “스스로의 악의”를 제어하지 못한 전범국가 일원으로서의 무의식이 투사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무고한 존재에게 가장 깊은 죄의식을 부여하는 방식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폭력의 이중성에 대한 경계를 상기시키며 더 묵직한 숙고를 불러일으킨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전에 “역사는 앞에 있고 미래는 뒤에 있다”라는 말로 과거에서 배워 내일을 만들어야 할 우리의 책임을 일깨운 적이 있다. 영화 제목의 ‘그대들’이라는 호명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듯 거장의 마지막 당부는 시종일관 미래의 젊은 세대들을 향해 있다. 그러니 모두 ‘전쟁’에 무감해지기보다는 그 무게와 고통을 순간순간 각성하며 살아냈으면 좋겠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존재를 향한 인간의 ‘우애’에 희망을 거는 두 영화의 결말에 대해서도. 슬프게도 우리는 아직 ‘종전(終戰)’하지 못한 미래를 건네받는 중이니 말이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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