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을 뚫고 나간 인디밴드[김학선의 음악이 있는 순간]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2023. 11. 7.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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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쯤 한 기획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한국, 특히 홍익대 인근을 중심으로 도심형 쇼케이스 페스티벌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가 말한 키가 2m인 애는 한국 인디 음악인을 가리키고, 천장이 1m인 곳은 한국의 음악 환경을 뜻한다.

그 기획자는 페스티벌에 내로라하는 해외 음악 관계자들을 초청해 한국 음악인들과 만남의 장을 마련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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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웨이브 투 어스 ‘시즌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10년 전쯤 한 기획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한국, 특히 홍익대 인근을 중심으로 도심형 쇼케이스 페스티벌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해외를 돌아다니다가 홍대를 보고 있으면 키는 2m인 애가 천장은 1m인 곳에 있는 느낌이다. 누군가 이 천장을 높여 주거나 부숴 주거나 해야 애가 편하게 다닐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하고 계속 불편하게 구부려 있다 보니까 불평불만만 많아진 느낌이 든다”란 얘기를 했다. 쇼케이스 페스티벌은 그 천장을 부수거나 열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가 말한 키가 2m인 애는 한국 인디 음악인을 가리키고, 천장이 1m인 곳은 한국의 음악 환경을 뜻한다. 한국은 밴드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나라다. 한국에서 밴드가 성장하는 과정은 대략 이렇다. 홍대 앞 작은 클럽에서 공연을 시작해 조금씩 인지도를 쌓고, 신인 선발 경연 대회에 입상해 이름을 더 알린다. 점차 공연장의 규모를 넓히고,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는다. 그리고 대망의 전국 투어를 벌인다. 그래봐야 예닐곱 도시다. 여기까지 성장하고 나면 똑같은 이벤트의 반복이다. 천장을 부수고 싶은 이유다.

웨이브 투 어스(wave to earth)의 활약을 보며 그 기획자의 바람과 현실에 답답해하던 인디 음악인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기획자는 페스티벌에 내로라하는 해외 음악 관계자들을 초청해 한국 음악인들과 만남의 장을 마련해줬다. 관계자들의 눈에 띄어 그들이 관여하는 해외 페스티벌에 초청받기를 원했고, 해외 진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그 노력과 정성이 통했는지 이제 케이팝 말고도 외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 음악들이 생겨나고 있다.

웨이브 투 어스는 지금 케이팝이 아닌 음악으로 해외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밴드다. 이들은 한국 밴드가 해외에서도 이런 좋은 반응을 얻고, 투어를 다닐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좋은 반응’의 실체는 이렇다. 전 세계인이 가장 많이 쓰는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 ‘스포티파이’에서 웨이브 투 어스의 월별 청취자 수가 724만 명이다. 웬만한 케이팝 그룹보다 많다. 좀 더 실감 나게 비교하자면 아이유(589만 명)보다는 많고, 아이브(909만 명)보다는 적은 숫자다.

대부분 아이유와 아이브는 알지만, 웨이브 투 어스는 모를 것이다. 지금 웨이브 투 어스가 거두고 있는 성과는 그래서 더 대단하다. 올해 8월에 시작한 북미 투어는 모두 매진을 기록했고, 그들의 영상마다 영어를 비롯한 다른 나라 언어의 호평이 가득하다. 이 호평과 성공의 원인을 콕 집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들의 음악에서 대략 짐작할 뿐이다. 여유로우면서 낭만으로 가득한 정서. 영어로 그 정서를 표현하는 노래에 전 세계 사람이 공감하고 호응하고 있다. ‘시즌스’는 웨이브 투 어스의 지향을 잘 보여주는 대표곡이다. 웨이브 투 어스가 뚫고 나간 천장 구멍 옆에는 더 많은 균열이 생겼을 것이다. 천장이 알아서 높아지진 않을 것이다. 함께 그 천장을 부수고 나갈 더 다양한 음악인을 기다리고 있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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