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초 문상철 결승타... KT, LG 꺾고 한국시리즈 기선제압
공격에서 트리플 플레이를 당하고, 홈을 파고들다 두 번이나 잡혔는데도 승리했다. 그것도 1점차. 3대2 승리. 운이 없는 듯 하다가 마지막에 운이 살아난 격이다. KT가 7일 열린 2023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정규 리그 1위 LG를 3대2로 제쳤다. 플레이오프에서 2연패 후 3연승을 거뒀던 KT는 이로써 ‘가을 야구’ 4연승 질주를 이어갔다. 이제 2021년 창단 첫 우승 이후 2년 만에 왕좌 탈환을 노린다. 지금까지 한국 시리즈에서 1차전 승리 팀이 우승을 한 경우는 39번 중 29번. 굳이 따지면 확률은 74.4%다.
지루한 공방이 이어지던 승부는 9회초 갈렸다. 2-2에서 LG는 마무리 고우석(25)을 올렸다. 고우석은 첫 두 타자(박병호-장성우)를 무난히 땅볼로 처리했으나 배정대(28)를 9구 승부 끝에 볼넷으로 내보냈다. 2사 1루에서 다음 타자는 문상철(32). 정규 시즌 고우석을 상대로 3타수 3안타로 아주 강했던 타자다. 그는 볼 카운트 2-2에서 고우석이 6구째로 던진 시속 133km짜리 커브를 잡아당겨 왼쪽 담장 상단을 때렸다. 그리고 상대 실책까지 겹쳐 3루까지 내달리며 포효했다.
문상철은 앞선 세 타석에선 삼진 2개를 당하는 등 3타수 무안타에 묶였다. 1-2로 뒤지던 2회 초 무사 1-2루에선 트리플 플레이(삼중살) 빌미까지 제공했다. 벤치 작전 지시 없이 스스로 기습 번트를 댔는데, 타구가 타자 박스 안에 떨어진 뒤 멈추면서 악몽이 시작됐다. LG 포수 박동원이 3루 수비를 들어온 유격수 오지환에게 송구해 2루 주자를 포스 아웃 처리했고, 오지환이 1루로 빠르게 공을 던져 문상철도 잡았다. 이 사이 1루 주자였던 KT 배정대가 2루를 거쳐 3루까지 뛰다가 또 잡혔다. 공식 기록으로는 문상철 병살타에 이은 배정대의 주루사. 역대 한국시리즈 두 번째 삼중살이었다. 2004년 한국시리즈 7차전 때 현대가 1회초 무사 1-2루 수비 상황에서 삼성 양준혁 1루수 직선타를 삼중살로 연결한 이후 19년 만에 나온 플레이였다. 문상철은 이날 졌다면 역적이 될 뻔 했으나 마지막 한 방 덕에 영웅으로 재탄생했다. 문상철은 경기 후 “(번트 사인이 없었는데) 빨리 동점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알아서 했다. (실패해서)어깨가 많이 무거웠는데 동료들이 ‘한 개만 치면 된다. 너한테 찬스 걸릴 것이다’라 다독여줘 부담을 덜었다”고 말했다.
KT는 이후에도 주루 플레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4회 초 황재균과 앤서니 알포드가 연속 볼넷을 골라 만든 1사 1·2루에서 장성우가 적시타를 쳐 동점을 만들었다. 이때 공을 중계하던 LG 오지환이 홈에 악송구를 했다. 알포드는 홈으로 뛰려다 멈추고 3루로 돌아갔다. 그냥 들어왔으면 살 수 있었는데 판단이 늦었다. 그런데 이 악송구를 홈 플레이트 뒤에서 잡은 LG 투수 켈리가 홈으로 던진다는 게 또 빗나갔다. 이때 알포드는 다시 홈으로 파고들었다. 이전 판단에 대한 만회 차원이었을까. 무리한 질주로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 공을 포수가 옆에서 잡아 홈을 지키려 들어온 1루수에게 던져 홈에 들어오던 알포드를 여유있게 잡아냈다.
7회 2사 1-2루에서도 대타 김민혁이 우전 안타를 때렸으나 홈으로 달려들던 2루 주자 장성우(33)가 LG 우익수 홍창기 송구에 걸려 아웃됐다. 장성우는 발이 느렸고, 홍창기 송구는 정확했다.
공격에선 답답한 흐름이 이어졌으나 KT 마운드는 견고했다. 선발 투수 고영표(32)는 4일 쉬고 나와 6이닝 7피안타에 몸 맞는 공 2개를 내주면서도 2실점(1자책점)으로 버텼다. 위기마다 절묘한 커브로 삼진을 잡아냈다. 다음 등판한 ‘영 건(Young Gun)’ 손동현(22)과 박영현(20)은 각각 7-8회와 9회를 완벽하게 막았다. 초구부터 스트라이크를 잡고 들어가는 공격적인 투구가 돋보였다.
LG는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21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올라 축제 분위기 속에 시리즈를 시작했으나 방망이가 터지지 않았다. 1회초 먼저 1점을 뺏긴 뒤 1회말 1사 1·3루에서 오스틴 딘의 내야 땅볼 때 2루수 박경수 실책으로 1점, 이어진 1사 만루에서 문보경의 우익수 희생타로 2-1로 역전한 뒤로는 끝까지 점수를 추가하지 못했다. 2회 2사 1-2루, 4회 2사 2-3루, 5회 2사 1-2루 기회에서 번번이 후속타가 불발했다. 6회부터 9회까지는 4이닝 연속 삼자 범퇴했다.
호수비를 여러 차례 선보이긴 했으나 실책도 4개 저질렀다. 잠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2만3750명 매진 관중 속에는 LG 가을 야구를 상징하는 점퍼를 입고 온 팬들이 많았다. 구단주인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1994년 한국시리즈 이후 29년 만의 우승을 기원하며 현장을 찾았다. 그 염원을 승리로 보답하지 못했다.
LG 선발 투수 켈리는 7회 1사까지 안타 4개와 볼 넷 2개를 내주며 2실점(1자책점)했다. 삼진은 6개를 잡았다. 나름 호투했다. 이후 이정용과 함덕주가 8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았으나 믿었던 마무리 투수 고우석이 무너졌다.
2차전은 8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LG는 최원태, KT는 윌리엄 쿠에바스를 선발 투수로 예고했다. KT 이강철 감독은 “2회 트리플 플레이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넘어갔다고 생각했는데, 고영표가 잘 막아줬다”고 말했다. 염경엽 LG 감독은 “팬들이 많이 와 주셨는데 이기지 못해 죄송스럽다. 전체적으로 경기 감각은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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