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불복종인가, 부적절한 행동인가…환경운동가들의 ‘명화 테러’ 시위 [미드나잇 이슈]
시민불복종인가, 눈살 찌푸리게 하는 행동에 불과한가.
6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이날 영국 환경단체 ‘저스트 스톱 오일’(JSO) 활동가 2명은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 걸린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 작품을 훼손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이 작품은 벨라스케스가 1647~1651년 사이 완성한 것으로, 내셔널 갤러리가 전시 중인 벨라스케스 작품 중 유일한 여성 누드화로 알려져 있다.
JSO 활동가 2명은 망치로 작품의 보호 유리를 깬 뒤 “새로운 기름과 가스는 수백만명을 죽일 것”이라며 “우리가 예술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삶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한다면 석유 사용을 멈춰야 한다”고 외쳤다.
이들이 ‘거울을 보는 비너스’를 대상으로 삼은 건 100여 년 전의 일과 관련이 있다. 여성 참정권 운동가인 메리 리처드슨은 1914년 동료 체포에 항의하며 이 작품을 7번 칼로 그었다. 리처드슨은 이 일로 6개월간 복역했고 이후 그림은 다시 복원됐다.
JSO는 독특한 방식으로 기후 시위를 벌인다. 지난해 10월14일엔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된 반 고흐의 해바라기에 토마토 수프를 던졌다. 이후 접착제로 미술관 벽에 본인들의 손을 붙였다. 지난해 7월에도 영국 왕립미술원에 전시된 ‘최후의 만찬’ 액자에 손을 붙인 뒤 흰색 스프레이로 ‘새 석유는 안 된다’(No new oil)는 문구를 적었다. 최후의 만찬은 지오바니 피에트로 리졸리의 1520년경 작품이다.
영국 법원은 지난 2월 최후의 만찬 액자에 손을 붙인 활동가 5명에게 각각 약 70만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윌리엄 넬슨 판사는 이들이 그림의 액자에 손상이 갈 것을 알면서도 무모한 폭력적 행동을 했다고 판시했다. 다만 시위 목적이 미술품을 훼손하려는 것이 아니라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임을 참작해 형을 선고했다.
이들의 이 같은 시위에 대해선 바라보는 시선이 갈린다. 우선 환경단체들은 이 같은 시위가 ‘시민불복종 운동’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시민불복종은 미국 작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주창한 개념으로 국가의 법이나 정부 권력 등이 부당하다고 판단될 때 고의적으로 법을 어기는 행위를 뜻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인 스테판 두자릭은 지난 5월 낸 논평에서 “기후 운동가들은 (기후 변화와 관련된) 가장 어두운 시기에도 그들의 목표를 계속 추구해왔다”며 “그들은 보호될 필요가 있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그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당한 목적이어도 부정한 수단이 이를 정당화할 수 없고, 현재의 방법은 대중의 지지를 받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영국 노동당 대표인 키어 스타머는 지난해 10월 “그들(기후 운동가)의 행동이 틀렸다고 생각한다”며 “이 문제에 대한 답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답을 갖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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