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취미? 50만원 썼어요"…오픈런 인파 몰린 '핫플' [여기잇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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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재팬' 분위기 속 '일본 고전 캐릭터' 열풍
"전날 밤부터 기대"…'4시간 대기' '오픈런' 대란
웃돈 붙어 되팔기도…"일본 캐릭터 구매력 폭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심했을 땐 애니메이션도 안 봤는데, 요즘엔 다들 즐기고 좋아하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는 거 같아요."
3일째 일본 캐릭터 전문 기업 '산리오'의 문구류를 구매하러 왔다는 김모 양(19)은 "어릴 때부터 '헬로키티'가 애착 인형이었는데, 요즘에 더 빠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양은 7일 오전 4시께부터 백화점 '오픈런' 대열에 합류했다. 명품이 아닌 일본에서 온 캐릭터 한정판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다. 그는 "요즘 일본 고전 캐릭터가 제일 인기가 많은 것 같다"며 3일간 총 50만원 가까이 썼다고 전했다.
일본 여행 및 상품 불매운동을 뜻하는 '노재팬(No Japan) 열풍'은 옛말이 됐다. 앞서 국내에서는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 동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2019년 7월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시작한 뒤, '노재팬 운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부 사람들을 중심으로 '반일'에 대해 피곤함을 호소하며 '예스재팬(Yes Japan)' 열풍이 불고 있다.
예스재팬은 일본 제품이나 문화라는 이유로 무조건 거부하지 않고, 콘텐츠 자체에 열광하는 현상을 말한다. 일본 맥주 등 제품 수요 회복에 이어, 일본 대표 캐릭터 기업인 산리오가 젊은 층의 관심 대상이 됐다. 산리오는 1974년 선보인 헬로키티로 이름을 알린 회사로, 올해로 탄생 50주년을 맞아 마련된 '헬로키티 50주년 기념 팝업스토어'는 여러 팬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날 문이 닫힌 백화점 앞에는 궂은 날씨를 뚫고 온 일명 '헬로키티 덕후'들이 모여 긴 대기 줄이 형성됐다. 오전 8시 25분께부터 캐치테이블 줄서기 애플리케이션(앱) 통해 현장 예약이 시작됐고, 한 시간 만에 대기인원이 450명 가까이 늘었다. 안내 직원은 "오픈 1시간 전부터 대기를 걸어놔도 입장하려면 4~5시간 정도 기다릴 수 있다"며 "오늘 새로운 일본 한정판 제품이 판매돼서인지 전날 밤부터 사람들이 몰려왔다"고 말했다.
오전 10시께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발 디딜 틈이 없이 사람들이 들어찼다. 팝업스토어는 오픈 첫날인 지난 1일부터 전날까지 약 1만명이 방문해 일평균 1600~1700명이 찾고 있다. 팝업스토어 관계자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의 여성들이 많이 오고, 아이들은 주로 부모님과 함께 주말에 많이 온다"며 "헬로키티는 나이가 좀 있는 고객들까지 팬층을 보유해 그들의 구매력이 상당하다. 웃돈 주고 되팔려는 '리셀러'들도 많이 온다"고 전했다.
이날 새로 출시된 일본 한정판 제품들은 진열되자마자 순식간에 동나고 채워지길 반복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장바구니를 하나씩 챙겨 들고 신중하게 제품을 골랐다. 2~3개만 담아도 10만원을 훌쩍 넘을 정도다. 이곳 관계자는 "해외직구를 안 해도 되고, 정식 수입 절차를 거치지 않은 개별 판매자로부터 사지 않아도 되는 일본 오리지널 제품이 잘 나간다"며 "100만원가량 지불하거나 재방문하는 분들도 많다"고 했다.
전날 오후 8시 30분께 대기를 시작해 '오픈런'을 성공, 첫 입장객으로 이름을 올린 20대 여성은 "노재팬 열기가 심했을 때는 일본 제품 구매를 꺼렸는데, 요즘에는 대리구매로 일본에서 직접 공수해 올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며 "일본 본사에서 출시한 제품이 더 들어오면 좋겠다"고 했다.
밤 12시부터 대기해 37만원가량을 지불했다는 20대 여성은 "원래 분홍색을 강조한 캐릭터를 좋아했는데 특히 헬로키티는 20대 초반 시절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며 "일부 '우익' 기업들이 한국 고객 등을 대상으로 기만하는 발언을 해서 불매가 생겼다고 생각하는데, 현재에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고 나 역시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고 했다.
인기 많은 제품을 재빠르게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는 광경도 포착됐다. "사람들이 다 가져가서 원하는 제품을 손에 넣지 못했다"며 발걸음을 돌린 이들도 있었다. 팝업스토어 관계자는 "이곳에서 8000원에 판매되고 있는 제품이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웃돈이 붙어 3만원에 판매되는 걸 봤다"며 "일본에서 온 '오리지널 상품'이고 공식 수입을 하다 보니, 아쉬워서 그렇게라도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이 같은 현상과 관련, 전문가들은 한일 관계 개선을 바라는 젊은 층이 많아지면서, 일본 제품과 문화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 늘어나고 있는 영향도 있다고 봤다. 지난 2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여론조사 기관인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20·30세대 626명을 대상으로 '한일관계 인식'을 조사한 결과, 긍정적이라고 답한 응답이 42.3%, 부정적이라는 답변이 17.4%로 긍정이 부정보다 2.4배 높았다.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10점 만점에 5.7점으로 평균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 업계 관계자는 "노재팬 이슈가 생겼을 때 일본 제품 관련 매출 타격이 심했는데, 요즘엔 많이 풀린 것 같다"며 "일본 브랜드여서 싫다는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오기보다, 캐릭터 그 자체가 좋아서 오는 경우가 더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스재팬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는 데에는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과 이념 등은 별개이기 때문"이라며 "지금도 일본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인식이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캐릭터 산업은 '귀엽다', '예쁘다'는 인식만으로도 경계심을 허물고 좋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과거에 노재팬을 너무나 강렬하게 경험한 후 시간이 흐르면서 소비가 역사와 정치와 연결되는 것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는 젊은 세대가 많아진 것"이라며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거리낌 없이 소비하고, 자유롭게 좋아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감정과 인식을 우선으로 물건을 구매하고, 그와 관련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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