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만지고 넘기고…섬마을에 반세기 첫 책방
신안에 ‘1004 책방’ 오픈
도서관도 겸해 ‘대여’ 가능
첫날 주민 40명 회원 가입
전국 서점 소멸 위기 속 낭보
“서점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시간이 나자마자 달려왔습니다. 빨리 와보고 싶어서 설레기까지 했다니까요.”
지난 1일 오전 전남 신안군 압해읍 ‘1004 책방’에서 만난 이미연씨(55)는 “빳빳한 책장을 넘기며 직접 책을 고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씨의 집은 압해읍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안좌면에 있다.
인터넷을 통해 책을 사왔다는 이씨는 “막상 받은 책이 생각했던 내용과 다를 때가 많았다”면서 “직접 보고 고르려면 목포까지 가야 했는데 이제 걱정을 덜었다”고 했다.
섬으로만 이뤄진 신안에 처음으로 서점이 생겼다. 1969년 무안군에서 분리된 이후 신안에는 지금까지 일반 서적을 파는 서점은 문을 연 적이 없다. 지도읍에 ‘서점’으로 등록된 업체가 있지만 주민들을 상대로 영업하진 않는다.
‘동네 서점’에 대한 주민들의 갈망은 컸다. 주민들은 인근 목포에서 볼일이 생겼을 때 겸해서 서점에 들러야 했다.
신선희 신안군가족센터장은 “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일’을 할 수 없었고 ‘베스트셀러’도 인터넷으로 사야 했다”면서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지만 ‘헌책’인 데다 ‘소유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한마디로 ‘독서 궁핍 지역’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군이 나섰다. 신안군은 주민들이 많이 찾는 가족센터 1층 150㎡ 공간에 ‘공공 서점’인 1004 책방을 만들고 지난달 31일부터 영업에 들어갔다. 책방은 전문업체에서 위탁운영한다. 군은 업체에 매년 8000여만원 운영비를 지원한다.
1004 책방의 넓은 서가에는 문학과 예술, 역사, 자연, 철학, 종교, 어린이 등 여러 분야 책들이 종류별로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지역에서는 찾기 힘든 전문서적을 포함해 총 6000여권에 이른다. 책방이 문을 연다는 소식에 출판사 4곳에서 1만권에 달하는 새 책을 기증하기도 했다.
책방 곳곳에는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계단식 공간도 마련됐다. 1004 책방은 책도 팔지만 도서관 역할도 겸한다. 신안 주민은 회원으로 가입하면 새 책을 한 번에 최대 3권까지 무료로 빌려 읽을 수 있다.
책방 영업 첫날 40여명 주민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책 3권이 팔렸고 빌려 간 책도 100권이 넘었다고 한다. 책방에서는 앞으로 작가 초청 북콘서트, 독서대회 등도 열린다.
전국 농어촌 지역 상당수는 신안처럼 동네 서점이 없거나, 단 한 곳뿐인 ‘서점 소멸위험 지역’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지난 6월 처음으로 조사해 발표한 ‘2022 지역서점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인천 옹진군과 강원 평창군, 경남 의령군, 경북 봉화·울릉·청송군에 서점이 한 곳도 없었다.
서점이 한 곳만 있는 ‘서점 소멸위험 지역’은 30곳이나 된다. 전남 9곳, 강원 6곳, 전북 5곳, 경북 4곳, 충남 2곳, 충북 2곳, 경남 2곳이었다.
글·사진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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