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정원의 선거개입 수단인 위법한 신원조사 폐지해야
국가정보원은 2012년 12월에 있었던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간인 3500명을 동원하여 댓글작업을 하는 방법으로 선거에 개입하였다. 수사 등으로 확인된 내용이다. 대표적인 댓글은 “박근혜 과거사 연설문 정말 명문이다” “문재인 후보 3000억원 횡령 사건” 등이다.
국정원 적폐청산 TF는 당시 국정원이 이들 3500명의 민간인에 대해 신원조사까지 한 사실을 확인하였다. 보수 성향인지를 비롯하여 소속과 경력, 각종 금융정보, 그리고 가족들까지 치밀하게 조사하였다. 적폐청산 TF는 국정원이 이 정보를 토대로 약점을 틀어쥔 채 내부 고발을 사전에 차단해 왔다고 판단하였다. 국정원 관계자는 여론 조작 등 민감한 사안을 다루다 보니 양심선언 등을 막기 위해 신원조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국정원 댓글작업에 동원된 3500명의 민간인들 가운데 단 한 건의 내부고발이나 양심선언이 없는 것은 신원조사가 내부고발과 양심선언을 차단하는 데 주효했음을 의미한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은 전 국정원 직원 A씨가 당시 야당이던 민주통합당에 제보함으로써 외부에 알려졌다. 그런데 국정원은 제보자 A씨를 국정원 직원법 등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였으며, A씨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였다는 이유로 현직 국정원 직원 B씨를 같은 혐의로 파면하고 검찰에 고발하였다.
내년 총선에서도 국정원이 민간인을 동원하여 댓글작업 등으로 선거에 개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여권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내년 총선 목표 의석수를 170석으로 제시했다고 하는데, 대통령 소속기관인 국정원은 대통령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또 내년 1월 경찰에 이관되는 대공 수사권을 되돌리고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년 총선에 국정원이 개입하더라도 외부에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댓글작업에 동원되는 민간인들에 대해 신원조사를 할 것이고 따라서 내부고발·양심선언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정원 전·현직 직원도 외부에 제보할 수 없을 것이다. 제보하는 경우 파면·고발되어 매우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원조사는 헌법의 법률유보원칙(헌법 제37조)에 위반되어 위헌이고 위법하다. 법률의 근거와 위임 없이 국회규정·대통령령으로 공무원·민간인의 공무담임권·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년 총선에서 국정원의 선거 개입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그 수단이 되는 위법한 신원조사를 신속히 폐지해야 한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 수단인 신원조사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대통령령인 보안업무규정을 개정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년 총선에서 국정원을 활용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는 차원에서 보안업무규정을 개정하면 좋을 것이다. 선거 개입 수단인 신원조사를 폐지하고 민생 우선 정책 등으로 유권자의 선택을 받고자 하는 것이 정도로 보인다.
대통령이 소극적인 경우 국회의장이 먼저 국회규정인 국회보안업무규정을 개정하여 국회 신원조사를 폐지하고 대통령에게 대통령령 개정을 요구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이 경우 대통령이 거부할 명분이 없고, 대통령령을 개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거와 투표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선거와 투표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민주주의 전체의 위기로 이어지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할 것이다. 선거와 투표에는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가 정확히 반영되어야 한다.
엄기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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