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400년 흑역사 [만물상]

김홍수 기자 2023. 11. 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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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400년 전 네덜란드 증권거래소에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는 동인도회사가 상장됐다. 이 회사 창립자 중 한 명이 공금 횡령으로 쫓겨났다. 그는 복수할 요량으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주식을 빌려서 팔고 ‘희망봉 부근에서 배가 침몰했다’는 가짜 뉴스를 퍼트려 주가를 떨어뜨린 뒤 싼 값에 주식을 되사들여 차익을 얻겠다는 것이었다. 최초의 공매도였다. 놀란 동인도회사가 ‘사악한 투자’를 막아달라고 정부에 청원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증시엔 늘 공매도가 존재했다. 뉴턴은 영국의 식민지 무역을 독점하던 남해주식회사에 투자했다가 “식민지에 금은 없고 벌레만 들끓는다”는 공매도 세력의 가짜 뉴스 공세 탓에 파산 위기에 몰렸다.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는 “공매도를 반역죄로 단죄하겠다”고 선포했다. 미국 대공황 당시 공매도가 들끓자 미 정부는 공매도 때 직전 거래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을 부르지 못하게 하는 업틱룰(uptick-rule)을 만들었지만 공매도를 근절하진 못했다.

▶2021년 미국의 게임스톱 사건으로 공매도가 다시 핫 이슈로 부상했다. 부실 덩어리 게임 유통업체 게임스톱의 주가가 폭등하자 헤지펀드들이 공매도에 나섰다. 이에 반발한 개미들이 “헤지펀드를 혼내자”면서 주가를 끌어올렸다. 다급해진 헤지펀드들이 공매도 구멍을 메우는 과정에서 50억달러 이상 손실을 봤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도 동학개미들의 집단 청원에 문재인 정부가 공매도를 1년 이상 전면 금지시켰다.

▶공매도는 투자 위험을 먼저 알리는 ‘탄광 속 카나리아’ 역할도 한다. 2016년 영국 투자자들이 독일 핀테크 기업 와이어카드를 부패 기업이라며 공매도 공세를 펼치자, 회사 측은 ‘앵글로색슨의 음모’라고 반박했지만 얼마 안 가 분식회계가 드러나 파산했다. 스타벅스를 위협했던 중국 루이싱 커피의 회계 부정을 폭로하고, 니콜라 수소 트럭의 사기 행위를 밝혀낸 것도 공매도 투자자들이었다.

▶공매도가 혐오의 대상이 된 데는 심리적 요인이 크다. 누군가 공매도로 큰돈을 벌었다는 것은 누군가 크게 돈을 잃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공매도 투자자는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상어 떼에 비유된다. 대공황 때 공매도로 큰돈을 번 유럽 투자자 코스톨라니는 “내가 돈을 버는 동안 친구들이 파산해 성공을 슬퍼해야 했다”면서 공매도 투자를 끊었다. 정부의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로 폭등했던 주가가 하루 만에 급락세로 반전하는 등 변동세가 이어지고 있다. 증시가 존재하는 한 공매도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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