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프리드 헤커 “미, 북핵 문제 이념적 접근 재앙적 결과 초래”
세계적인 핵 과학자인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7일 “북한은 존재해선 안 되는 국가와 같은 이념적 접근이 북핵 문제 해결에 재앙과 같은 결과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헤커 박사는 이날 서울 이화여대에서 열린 초청 강연에서 “미국은 1990년대부터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북핵과 관련해 결정을 해야 할 변곡점마다 엇나간 선택을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헤커 박사는 “북핵 문제는 단기적으로 해결이 어렵다”며 “우리는 잃어버린 기회를 다시 찾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헤커 박사는 핵무기 제조와 글로벌 핵 안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과학자이다. 세계 최고의 핵 연구 시설인 미국 로스앨러모스국립연구소장을 지냈으며 냉전 말기 미국과 러시아의 핵 협상에 관여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매년 방북해 총 7차례 영변 핵시설을 시찰했다. 헤커 박사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30년 동안 미국의 북핵 정책에 대한 평가와 제언을 담은 <핵의 변곡점>을 썼으며 이 책의 한국어 번역본이 최근 출간됐다.
헤커 박사는 “냉전이 붕괴하던 1990년대 김일성은 외교를 통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추구해 중국과 소련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며 “외교 정책이 실패할 때를 대비해 핵무기 개발도 병행하는 ‘이중경로 정책’을 펼쳤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 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해 외교를 이용할 뿐이라는 기존 설명과 배치되는 주장이다. 그는 “미국 정부는 이런 이중경로 전략을 알아보지 못하고 ‘핵 개발이냐 비핵화냐’ 하는 양자택일로 접근해 협상의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다.
헤커 박사는 미국 정부가 북핵과 관련한 잘못된 결정을 내린 변곡점의 사례로 조지 부시 미 행정부 시절의 북·미 제네바 합의 파기, 북한 광명성 3호 발사에 대한 미국의 규탄과 2012년 북·미 합의 파기 등을 들었다. 북한은 협상 여지가 없는 상대이며 나쁜 행동에 어떤 인센티브를 줘선 안 된다는 관점에 따른 행동이다. 헤커 박사는 “북한도 핵 개발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일변도의 행동은 “북한이 한국 대신 중국과 밀착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핵 문제 해결의 기회를 놓친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트럼프 행정부의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을 들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의회에서 첫 탄핵소추될지 모르는 미국 정치 상황과 맞물린 상황이었다며 회담 결렬과 관련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좌·우파 모두로부터 칭찬을 받았던 흔치 않은 순간이었지만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헤커 박사는 “북한의 핵탄두는 계속 늘어났다”며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포기하고 중국과 러시아와 밀착하는 길로 방향을 전환했다는 점이 우리가 더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핵과 관련한 모든 국제협약을 어기고 있어 더 책임있는 국가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북한이 전략적으로 방향 전환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헤커 박사는 단기적으로는 북핵 문제 해결의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희망이 있다고 본다. 문제는 그때 우리가 (북한의 전략을 이해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헤커 박사는 국내 일각에서 주장하는 독자 핵무장론과 관련해 “세계는 핵을 개발한 북한을 실패 사례라고 본다”며 “자체 핵무장은 한국의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경제에 투입해야 할 자원을 핵 개발에 추진하게 될 것이며, 세계 최고 수준인 원자력 발전을 이용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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