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의사회 의료진 가자지구에 300명 남아···눈앞서 구급차 폭발에 참담”
“MSF 의료진 300명 가자지구에 남아있어”
“가자지구만큼 처참한 곳은 전례가 없을 정도”
“병원 문 앞에서 구급차로 이송되는 환자를 기다리는데 바로 눈 앞에서 구급차에 직격탄이 떨어졌다.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사방에 쓰러졌고, 의료진들이 다친 사람들을 병원 안으로 이송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국경없는의사회(MSF) 소속 의료진이자 가자시티 최대 병원인 알시파 병원 의사인 오베이드는 최근 MSF 의료진 단체 대화방에 참담한 심경을 드러냈다. MSF 한국 비상임이사인 이재헌 국립중앙의료원 서울권역외상센터 외상전담전문의는 6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오베이드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가자지구에 남아있는 MSF 의료진의 처참한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 1일 MSF 소속 외국인 의료진 22명이 이집트 라파 국경을 통해 출국했지만 여전히 300명이 넘는 MSF 소속 팔레스타인 의료진이 가자지구 전역에 흩어져 환자를 돌보고 있다. 이 전문의는 “남아있는 MSF 의료진들은 사실상 가자지구에 갇혀 의약품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병원까지 포격의 피해를 받고 있는 상황에 크게 좌절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국제인도법상 전쟁 중에도 공격이 금지돼 있는 병원을 향해 포격이 이어지고 있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3일 알시파 병원 입구에서 중상자를 이송하던 구급차 행렬이 공습을 받아 15명이 숨지고 60여명이 다쳤다. 같은날 가자시티 내 두 번째로 큰 의료시설인 알쿠드스 병원에도 공격이 이어져 21명이 부상당했다. 가자지구 북부의 인도네시아 병원 인근에도 공습이 잇따르면서 환자는 물론 의료진의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이번 전쟁이 시작된 후 희생된 의료진은 175명에 달한다.
현재 이스라엘군(IDF)은 알시파 병원 아래 하마스 사령부가 숨겨져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곧 알시파 병원에 대한 군사 작전이 시작될 지 모른다는 보도도 나온다. 이 전문의는 “병원을 공격하는 것은 비인도적인 행위”라며 “확실한 건 전쟁 피해자 대다수가 어린아이들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날 누적 사망자 1만22명 가운데 어린이가 4104명이라고 밝혔다.
MSF 소속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요르단 람사, 아이티 타바, 부룬디 부줌부라 등에서 의료활동을 펼쳤던 이 전문의는 2018년 가자지구 알아우다 병원에서 일했던 경험이 떠올라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는 “당시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이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을 추진하자이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지구에서 시위를 벌였다”면서 “이를 진압한다며 이스라엘군이 시위대의 다리를 향해 발포해 하루에도 총상 환자 수백명이 병원으로 쏟아졌다”고 했다. 정형외과 전문의인 이 의사는 “군사용 총에 맞으면 뼈가 으스러지고 살점이 떨어져나가기 때문에 과다출혈되는 환자들의 생명과 다리를 살리기 위해 의료진들이 고군분투했었다”고 회상했다.
현재 가자지구의 상황은 더 참담하다. 알시파 병원에서는 수용 가능 인원인 700개 병상을 훨씬 넘어선 6만명 이상이 부상을 치료하거나 이스라엘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머무르고 있다. 이 의사는 “5년 전에도 병원에 전력이 잘 공급되지 않아 자체 발전기를 돌렸고, 의료환경 또한 열악했다”면서 “전쟁 중인 지금 가자지구 의료진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전했다.
MSF 소속 의료진들에 따르면, 현재 가자지구 병원에서는 의약품이 떨어져 최소한의 마취만으로 절단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병상이 부족해 복도나 바닥에서 환자를 돌보는 건 일상이 됐다. 환자가 물밀듯이 쏟아지면서 평소 3주치 분량 의약품이 3일 만에 동나고 있다. 전력 부족으로 중환자실 산소호흡기, 모니터링 기계 등은 제대로 작동조차 하지 않는다. 이 전문의는 “그중에서도 가장 의료진들이 힘들어 하는 것은 깨끗한 물이 없다는 점”이라며 “담수시설을 가동시키기 위한 연료 공급도 시급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문의는 “MSF는 각종 분쟁지역을 찾아가는 단체이지만, 가자지구만큼 처참한 곳은 전례가 없을 정도”라며 “국경이 봉쇄돼 사실상 갇힌 상태에서 인도적 지원조차 받을 수 없는 가자지구는 그야말로 ‘지붕 없는 감옥’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MSF는 가자지구로 의료진을보내기 위해 이집트 라파에 대기 중이다. 이 전문의는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MSF가 전담의료팀을 꾸려 가자지구를 지원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도 국경이 열리지 않았다”면서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 즉각적인 휴전과 가자지구 인도적 지원을 요구해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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