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방시혁 “K팝에서 K를 떼야 산다…이대로면 성장 한계 명확”
“혁신은 일상의 작은 불편들과 부조리 해소”
“케이팝에도 독기는 중요한 요소. 그건 야망의 증명이다. 팬들도 알아봐”
방시혁 하이브 의장 인터뷰
방탄소년단(BTS)을 탄생시킨 방시혁에게 단도직입으로 당신은 프로듀서냐 기업가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이런 답이 나온다. 천생이 프로듀서다. 음악을 만드는 게 천직이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박진영과 함께 JYP엔터테인먼트를 창업해 케이팝 시장의 사업감각을 익혔다. 그리고 여기서 독립해 회사를 창업한다. 2005년 빅히트엔터테인먼트로 시작한 지금의 하이브다.
방탄소년단의 성공, 더 나아가 방시혁의 성공엔 누구도 생각지 못하고 감히 따라오지도 못하는 그만의 독특한 인생관이 있다. 2019년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서 그는 마치 20세기 세계를 풍미한 실존주의 철학가 같은 말은 했다.
“나는 꿈은 없지만 불만은 엄청 많은 사람이다. 세상에는 타협이 너무 많다. 더 잘할 방법이 분명히 있는데도 사람이 튀기 싫어서, 일 만드는 게 껄끄러우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폐 끼치는 게 싫어서, 혹은 원래 그렇게 했으니까, 갖가지 이유로 입을 다물고 현실에 안주한다. 나는 태생적으로 그걸 못한다.”
불만은 분노로, 분노는 소명으로 그리고 그 소명은 혁신으로 이어졌다. 그에게 혁신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혁신이라는 건 결국은 그냥 일상의 작은 불편들과 부조리를 해소하는 거고 그에 대한 방법론들이 쌓이다 보면 결국 임계를 넘게 되고 그러면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지는 게 그게 혁신이었다. 그런 작은 일상에서의 혁신을 쌓다보니 한국의 작은 연예기획사는 어느덧 시총 10조원이 넘나드는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회사가 되었다.
EY한영이 주최하는 ‘EY 최우수기업가상’에서 올해 마스터부문의 영예를 안은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을 용산에 소재한 하이브 본사 5층에서 만났다. 주변에 장식품을 거의 두지 않는 그의 성격 탓에 면적은 그리 크지는 않으나 공간은 넓어 보이는 그의 사무실에서 약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는 서울대 축사 얘기부터 시작했다.
=방탄소년단 초기 개인적으로는 화가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멤버들 하고도 지금 사는 얘기를 해야 되지 않겠냐, 너희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너희와 같은 청년 세대들 혹은 더 어린 소년 소녀들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에게 방의장의 생각이 주입된 건 아닌가
=내가 가장 불편해하는 건 기획사가 아티스트에게 일방통행으로 무엇인가를 지시하거나, 기획을 해놓고 아티스트한테 맞추라고 하는 거다. 하이브에서 그런 일이 없다.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강요하는 게 주입 아닌가. 나는 방탄소년단과 그런 식의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았다. 사실 내가 우리 회사에서 트레이닝과 신인 개발 방식을 수립했을 때 반발이 심했다. 연습생들의 자율권을 존중하고 연습생들의 생활을 통제하지 않고는 할 수가 없다는 반발이었다. 하지만 나는 시대를 봐야한다며 밀어붙였다. 나는 비주류였다.
-일반적으로 분노는 비주류의 몫 아닌가. 지금은 주류가 됐는데 그러면 분노는 사라지는 거 아닌가.
=비주류에게 분노가 크다는 점엔 공감한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그런 비주류적인 감성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주류가 됐다고 분노가 없어지진 않는다. 일상 속에서 작은 불합리나 부조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으면 그냥 놔두고 지나치지 못한다. 참을 수가 없다. 음악 산업에서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지속적으로 노력을 하고 있다.
-하이브나, 방탄소년단은 끊임없는 혁신의 산물이다. 혁신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평소에 나는 우리 회사 임직원들에게 “혁신하면 거창한 걸 생각하는데 그러지 말자”고 말한다. 혁신이라는 건 결국 그냥 일상의 작은 불편들을 해소하는 거고 그것들의 방법론들이 쌓이다 보면 결국 그것이 임계를 넘고,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거다.
=예를 들어 그냥 왜 음악 산업에 이렇게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데 소비자가 방송국에 가서 밤새 줄을 서야 되지? 이런 불만에서 시작된다. 우리 같은 음악 산업 종사자나 방송국도 과거에는 팬들을 소위 ‘빠순이’ 식으로 취급했다. 팬들이 줄을 8시간 섰는데 갑자기 담당자도 아니고 AD 밑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나와서 줄 다시 서라 한다. 벌써 8시간 섰는데. 집에 가야 하는데. 이런 일들이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게 내가 화가 난다고 말하는 거고 분노한 것들이다. (이러한 불만에서 태동된 혁신이 지금의 위버스다)
-지금은 K팝이 절정이지만 위기는 언제든 올 수 있고, 또 일각에선 위기가 시작됐다는 얘기도 있다.
=사실 나는 요즘 K팝에서 K를 떼야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대로 가는 것이 K팝 산업의 성장에 도움이 되냐 하면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K팝은 이제 더 넓은 시장에서 더 넓은 소비자층을 만나야 한다. 우리가 글로벌하게 보편적 가치에 접근할 수 있는 출구와 입구들을 많이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K팝은 지금 구조로 계속해서 가면 나는 분명 성장에 제한이 생긴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위기를 언제 느꼈나
=작년에 그럴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제 동남아에서 눈에 띄는 지표 하락들을 보면서 굉장히 위험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 유니버설뮤직그룹과 진행하는 걸그룹 오디션 프로젝트가 그런 차원에서인가
= 관훈클럽에서도 말한 건데 다양한 전술 중의 하나다. 다양한 국가에서 온 분들을 대상으로 국가별 타깃을 넓혀 나가고 그 다음 한국 혹은 아시아 팀이 아닌 다른 아티스트를 통해 K팝을 소개하는 등의 확장이 필요하다
-좋은 아티스트를 뽑는 게 관건일텐데 슈퍼스타의 자질은 어떤 건가.
=스타성이 가장 중요하다. 스타성이라 하면 정의내리기가 쉽지 않다. 스타성이 있다는 건 음악적으로 본인을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거고 그런 재능이나 스킬을 갖춰야 하는 거다. 케이팝의 경우엔 팬들의 취향 리스트 안에 있어야 한다. 이게 매력이다. 그리고 회사가 어떤 특정한 기술들을 가르칠 때 그걸 빨리 습득해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 방탄소년단을 보면 춤출 때 뼈 부러질 듯 춘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 건가. 훈련인가?
=훈련으로 할 수 있는 건 데뷔 후 1년 정도까지다. 결국은 본인들 몫인데 사실 팬들하고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케이팝 팬들은 특정 취향이 있고 이들이 자기의 선택에 실패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팬들을 실패하지 않게 하려면 기본적으로 아티스트는 야심가이거나 야망가여야 한다. 성공을 바라지 않는 아티스트는 성공하기 어렵다. 그런 것들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무대다. 무대를 잡아먹는다는 말들을 하는데 무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대해 팬들은 예민하다. 이제 재미없구나, 돈 좀 벌더니 연습하기 싫은가 보다, 이런 게 다 보인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소탈하고 굉장히 서민적인 친구들이지만 음악적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야망만큼은 엄청나게 컸던 친구들이다. 그것들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무대였다. 연습생 때부터 1년 정도는 정말 나를 미워할 정도로 훈련시킨 건 맞는다. 그런데 이제 회사는 옛날처럼 뭐 연습해야 한다. 이런 말 안한다. 어떻게 하나. 누가 방탄소년단한테 감히 “당신들 일주일에 몇 시간 연습해야 돼” 이런 얘기 못한다. 그렇지만 귀찮네, 못하겠네 해도 결국은 연습장에 나타난다. 연습 안한 상태로는 무대에 오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연습은 자신감의 근원이다.
-어떤 기업가가 1등과 2등의 차이는 독기라고 하던데.
=케이팝 씬에서도 독기는 중요한 요소다. 그건 야망의 증명이다. 팬들도 알아본다. 그런데 이것만이 1등의 자질이다 이런 건 없다. 예를 들면 “성실하지 않으면 1등이 아니다. 1등이 되기 어렵다” 이런 말을 하는데 연습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스타성은 정의내리기가 힘들다고 말한 이유가 이런 데 있다. 물론 방탄소년단이 왜 훌륭한가에 대해서는 얘기를 할 수 있지만.
-그러면 방의장이 스타성을 알아보는 눈은 타고난 건가
=당연히 타고나는 이른바 재능의 영역이란 게 있을 거다. 그러나 이 역시 훈련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좋은 스승 밑에서 좋은 스타들을 보면서 훈련되는 게 더 크다. 내 커리어를 보면 놀라울 만큼 어릴 때부터 슈퍼스타들하고 일을 했다. 박진영 씨가 발탁해서 김형석 사무실에서 음악하면서 god , 박지윤, 비 등과 함께 했다. 그들은 모두 한 세대를 풍미했던 스타들이다. 일반적인 아티스트들을 보고 자란 프로듀서랑 눈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기업가로서도 성공했는데 본인은 어디에 가깝나? 좋은 기업가, 아니면 좋은 프로듀서?
=그냥 백대빵 프로듀서다. 나에겐 사람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어떤 개념이나 소명의 형태로 제시하는 이런 프로듀서가 갖춰야할 재능은 있는 것 같다. 내가 기업가로서의 자질로 높게 평가하지 않는 이유는 경영적 측면에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나는 바로 내일 망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때 같이 일하던 사람들한테 많이 들었던 말이 있는데 이런 거다. 당신은 비전도 좋고 꿈도 좋고 머리도 좋고 다 좋은데 내일 일어날 일하고 100년 뒤에 일어날 일을 구분을 못하는 사람이다. 결국 그런 밸런스를 잡아주고 이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기능할 것인가를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야 되는데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물론 가장 큰 운은 방탄소년단 멤버 7명을 만난 거지만.
-기업을 운영해보니 무엇이 중요하던가
=기업가란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이 든 건 2011년이다. 한 6년 대차게 말아먹고 든 생각은 “왜 우리 회사는 한 해 잘되면 한 해 망하지” 이런 거였다. 부도위기가 지속됐다. 그때부터 경영적 의사결정에서 내가 많이 빠지기 시작했다. 프로듀서는 대부분 변덕스러운 사람들이다. 기업의 펀더멘탈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흔들린다. 그런 것들을 경영을 전문으로 한 사람들한테 넘겼고, 그것들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기업가로서의 본격적인 고민은 2014년 정도부터다. 기업은 지속 성장해야 되고 그러려면 자본 조달은 어떤 형태로 해야 되고, 우리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되는 기능들은 무엇이고, 사람들은 어떻게 구할 수 있고, 기업문화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등을 고민하게 됐다.
-그 고민을 통해서 얻은 결론은 뭔가
=그 고민이 지금의 하이브인 것 같다. 결론은 인사가 가장 중요하고, 인사 안에서도 채용과 문화가 중요하다. 그 다음에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 결국 우리의 본질은 팬과 콘텐츠라고 정리했다. 이런 대전제 하에 지속 성장이 가능한 구조들을 짰다. 매뉴얼을 짜고 문화적인 원칙들을 세우고 지금 우리가 DNA라고 부르는 것들을 만들어내고 우리의 인재상을 정립했다.
-기업을 하면서 두렵지 않나
=매일 두렵다. 하루도 두렵지 않은 날이 없다. 잠을 잘 못 잔다. 매일, 내일 망할 것 같아서.
그의 오래된 습관인 폭음이 어쩌면 이런 불면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상상이 들었다. 그래서 사실 인터뷰 첫 질문을 ‘술’로 했다. 아이스브레이킹할 겸. “혹시 어제 술 좀 했냐”고.
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듯한 답이 돌아왔다.
“옛날에 폭음 했다. 살 찐 것도 술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에 향후 5년간 회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계획을 마련했는데 막상 일을 하려니 가장 문제 되는 게 시간이었다. 시간이 모자랐다. 그걸 해결하려면 내가 하던 일을 없애야 했다. 쉬는 시간을 줄이진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낭비하는 시간이 뭔가 생각해 보니 술 먹고 아침에 해롱대는 시간이었다. 그걸 없앴다. 그래서 전보다 술을 덜 먹고 폭음은 잘 안한다.”
방시혁에게 기업가는 매순간이 위기다. 그리고 그 위기를 헤쳐 나갈 책무가 그의 어깨를 무겁게 누른다. 매일 도전하고 혁신하고, 그리고 시간을 경영해야 하는 이유다.
[정리=이선희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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