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남현희가 속았다면 말이 안 되나
전청조가 저지른 희대의 사기극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전청조 재벌 3세 사기극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그가 남녀의 성별을 넘나들었다는 점이다. 남성에겐 여성으로 접근하고, 여성에겐 남성으로 접근했다고 한다. 전 국가대표 펜싱 선수인 남현희가 전청조와 결혼까지 약속해 이 사건의 중심에 섰다. 전청조는 남현희에게 남성으로 접근해 결혼을 준비하면서도, 같은 기간에 다른 남성에게 여성으로 접근해 결혼을 요청했다고 한다.
보통 남을 속이는 사람들은 몰래 숨어서 일을 추진한다. 그런데 전청조는 인터뷰를 자청하며 언론까지 이용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이 사태가 터진 것이 바로 전청조의 잡지 인터뷰 때문이었다. 그 인터뷰에 나서지만 않았어도 전청조와 남현희는 순조롭게 결혼까지 했을 가능성이 높다. 전청조의 목표물은 남현희 펜싱 학원의 학부모들이었던 걸로 보인다. 자신이 유학 관련 사업을 한다면서, 오은영 박사도 함께 하니 학생 1인당 3억 원 이상씩을 내라고 학부모들에게 요구했다고 한다. 오은영 박사 이야기는 물론 거짓말이었다.
남현희 펜싱 학원 학부모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 언론에 나섰을 것이다. 남현희와 결혼할 재벌 3세라고 정식으로 보도되면 그의 공신력이 대폭 상승할 것이니까. 이렇게 언론활용까지 했던 전청조는 경찰 조사 받기 직전에도 잇따라 방송 인터뷰에 나섰다. 이번에도 물론 언론을 이용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 방송에서 그는 "제 의혹을 다 이야기하면 남현희가 쓰레기가 되고 나만 살게 된다(…). 제가 나쁜 사람이 돼야 이 사람이라도 산다"라고 했다. 자신의 잘못을 남현희를 사랑한 죄로 축소하면서 책임을 남현희에게 전가하는 프레임이다. 잘못은 남현희가 다 했고 자신은 거의 잘못이 없다는 식이다.
그러면서 남현희가 이미 지난 2월에 전청조가 재벌 3세가 아니라는 걸 알았고, 성전환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았다고 주장했는데 이 두 주장 모두 신뢰성이 떨어진다. 전청조는 숨 쉬듯 거짓말을 하는 매우 반사회적인 인물로 보이기 때문에 그의 말에 휘둘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지금 많은 이들이 남현희가 공범이라고 단정한다. 그런데 그 근거가 없다. 단지 전청조의 황당한 거짓말에 속았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사람은 얼마든지 황당한 말을 믿을 수 있는 존재다. 사이비 종교를 믿는 이중에 멀쩡한 엘리트들도 있지 않은가. 재벌 3세로서 사랑한다고 접근하면서 막대한 호의를 베풀고, 의지할 버팀목이 되어주면서, 아이에게 장차 그룹을 물려주겠다고 하면 현혹될 수도 있다. 일단 현혹되면 마치 눈 옆을 가린 경주마처럼 주변의 의심스러운 정황에 눈을 닫고 오직 상대가 제공하는 달콤한 판타지만 보게 된다. 게다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전청조는 언론까지 이용할 정도로 대담하고 치밀하게 속이는 사람이다.
이렇기 때문에 속단은 금물이다. 지금은 공범일 가능성과 속았을 가능성이 모두 열려 있다. 어떤 수사 결과가 나오는지 지켜봐야 할 시점이다. 일부 언론이 남현희를 공범으로 몰아가듯이 보도하는데, 조심해야 한다.
남현희가 자신이 피해자라고 하자 사람들은 그가 피해를 당한 것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남현희는 지금 평판이 대붕괴하면서 향후 회복이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그가 정말 속았다면 이런 사회적 추락도 분명히 피해라고 할 수 있다. 사기꾼과 결혼 약속까지 하며 농락당한 것 자체도 큰 피해다. 정말 속았는지의 여부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남현희가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도 아직 알 수 없다. 오직 확실한 건 지금 상황이 확실하지 않다는 점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답을 정해놓고 단죄부터 하는 건 문제다.
우리 사회문화의 고질병이다. 꼭 누군가를 먼저 악인으로 찍어서 단죄부터 하려 한다. 과거 티아라나 김보름 선수도 그렇게 여론재판에 당했다. 나중에 다른 정황이 드러나도 대중은 '아님 말고'식이고 이미 상대는 사회적 치명상을 입은 후다. 단죄는 근거가 확인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답답하더라도 근거가 나올 때까지 판단을 유보할 줄 아는 성숙함이 요청된다.
지금 단계에서 지적할 수 있는 건 유명인의 태도 부분이다. 사기꾼들이 유명인, 특히 연예인에게 재력을 과시하며 접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유명인은 언제든 이용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호의를 베풀며 접근하는 이에 무조건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자신의 피해, 그리고 타인의 피해를 모두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안철수씨 조용히 하세요"...소리 지른 사람 알고보니 옆방의 이준석
- 아내와 다투다 홧김에…그네 타는 딸 3m 날려버린 아빠
- "요즘 파리바게뜨 왜 이래"…행주 이어 롤케이크에 곰팡이가
- "당신 좋아해" 지인에게 수차례 문자와 꽃 보낸 소방관…직위해제
- 도주 3일째 검거된 김길수…택시비 내준 여성에 전화했다가 덜미
- [트럼프 2기 시동] `행정부 충성파로 신속 구성한다"
- 온누리상품권 부정유통 13곳 적발… 중기부 "매월 현장조사"
- 공수 뒤바뀐 여야… 국힘, 1심 선고 앞두고 `이재명 때리기` 집중
- `이사회 2.0` 도입 제시… 최태원 "사후성·평가로 역할 확대"
- 몬스테라 분갈이 네이버에 검색하니 요약에 출처까지… "`AI 브리핑` 검색 길잡이 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