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숏컷’ 혐오 폭력

이명희 기자 2023. 11. 7.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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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23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추모 공간이 마련된 서울 중구 2호선 신당역 화장실 앞에 시민들이 작성한 추모 메시지가 빼곡히 붙어 있다. 문재원 기자

“머리가 짧은 것을 보니 페미니스트.”

지난 4일 밤, 경남 진주시 한 편의점에서 술에 취한 20대 남성이 근무 중인 또래 여성에게 페미니스트냐며 시비를 걸고, 마구 때리는 일이 있었다. 말리던 손님도 폭행을 당했다. 이유는 어처구니없게도 ‘여성의 머리카락이 짧다’는 이유였다. 그는 “나는 남성연대인데 페미니스트는 좀 맞아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사건이 알려지자 소셜미디어에선 짧은 머리 스타일인 ‘숏컷’을 한 여성을 지지하는 캠페인이 확산하고 있다. ‘#여성-숏컷-캠페인’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짧은 머리 인증 사진을 올리며 피해자와 연대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극단적인 ‘여성 혐오’ 폭력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대부분 이 사건을 보면서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3관왕을 한 양궁 선수 안산을 향한 백래시(여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집단적 공격)를 떠올릴 것이다. 안산의 짧은 헤어스타일을 두고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페미니스트’라며 한 ‘사이버 불링(온라인상 집단 괴롭힘)’이 도를 넘었다. 당시에도 신체심리학자 한지영씨가 트위터에 “우리 여성 선수 선전을 기원하며 여성-숏컷-캠페인 어떤가요?”라는 글을 올려 많은 이들이 해시태그 운동에 동참했다.

여성들이 이 사건에 공감하는 건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가 실제 폭력으로 현실화됐다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일 테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책 <누가 여자를 죽이는가>에서 “혐오 범죄인지 아닌지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 핵심은 ‘피해자를 선별했는가’에 있다”고 한다. ‘여성’이라는 집단에 대한 편견이 피해자를 선별하는 근거가 된다면 혐오 범죄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바탕에는 여성 혐오가 깔려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등의 가장 큰 백래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 폐지’ 등으로 정부가 여성을 지운 결과 “여성안심귀갓길 사업엔 남성 보호가 빠졌다”(최인호 관악구의원)고 외치는 게 현실이다. 여성 혐오를 조장하는 데 정부는 과연 책임이 없는가. ‘남녀 갈라치기’ 프레임을 표몰이에만 이용하는 토양 위에서 혐오는 무럭무럭 자랄 뿐이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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