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숏컷’ 혐오 폭력
“머리가 짧은 것을 보니 페미니스트.”
지난 4일 밤, 경남 진주시 한 편의점에서 술에 취한 20대 남성이 근무 중인 또래 여성에게 페미니스트냐며 시비를 걸고, 마구 때리는 일이 있었다. 말리던 손님도 폭행을 당했다. 이유는 어처구니없게도 ‘여성의 머리카락이 짧다’는 이유였다. 그는 “나는 남성연대인데 페미니스트는 좀 맞아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사건이 알려지자 소셜미디어에선 짧은 머리 스타일인 ‘숏컷’을 한 여성을 지지하는 캠페인이 확산하고 있다. ‘#여성-숏컷-캠페인’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짧은 머리 인증 사진을 올리며 피해자와 연대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극단적인 ‘여성 혐오’ 폭력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대부분 이 사건을 보면서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3관왕을 한 양궁 선수 안산을 향한 백래시(여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집단적 공격)를 떠올릴 것이다. 안산의 짧은 헤어스타일을 두고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페미니스트’라며 한 ‘사이버 불링(온라인상 집단 괴롭힘)’이 도를 넘었다. 당시에도 신체심리학자 한지영씨가 트위터에 “우리 여성 선수 선전을 기원하며 여성-숏컷-캠페인 어떤가요?”라는 글을 올려 많은 이들이 해시태그 운동에 동참했다.
여성들이 이 사건에 공감하는 건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가 실제 폭력으로 현실화됐다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일 테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책 <누가 여자를 죽이는가>에서 “혐오 범죄인지 아닌지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 핵심은 ‘피해자를 선별했는가’에 있다”고 한다. ‘여성’이라는 집단에 대한 편견이 피해자를 선별하는 근거가 된다면 혐오 범죄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바탕에는 여성 혐오가 깔려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등의 가장 큰 백래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 폐지’ 등으로 정부가 여성을 지운 결과 “여성안심귀갓길 사업엔 남성 보호가 빠졌다”(최인호 관악구의원)고 외치는 게 현실이다. 여성 혐오를 조장하는 데 정부는 과연 책임이 없는가. ‘남녀 갈라치기’ 프레임을 표몰이에만 이용하는 토양 위에서 혐오는 무럭무럭 자랄 뿐이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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