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욥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가
죽음보다 못한 고통 속에서 욥은 왜 자신이 그런 재앙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어야 하는지 하늘에 묻는다. 욥기를 읽어가는 독자는 오늘의 이 현실에서 욥이 누구인가 묻게 된다. 욥의 후손인 이스라엘 사람들인가, 자기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인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는 대작 ‘파우스트’를 60여년에 걸쳐 집필했다. 그 집필기 한중간에 쓴 것이 극의 머리를 장식하는 ‘천상의 서곡’이다. 이 서곡에서 천상의 ‘주님’은 파우스트의 영혼을 걸고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내기를 한다. ‘파우스트를 유혹해 어디든 끌고 다녀보라.’ 인간을 불신하는 메피스토펠레스는 주님이 내기에 지고 말 것이라고 호언한다. 이성을 지녔다고 거들먹거리지만 짐승보다 못한 게 인간이라는 것이다. 악마의 장담에 주님은 답한다. “선한 인간은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올바른 길을 잃지 않는다.”
괴테가 ‘천상의 서곡’ 모티브를 빌려온 곳은 ‘구약성서’의 ‘욥기’다. 욥기의 분위기는 ‘파우스트’보다 훨씬 더 어둡고 무겁다. 하늘의 신이 천사들을 불러 모은다. 땅 위를 돌아다니던 사탄이 천사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을 보고 신이 말한다. “너는 내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욥만큼 온전하고 진실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한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 사탄이 답한다. “손을 들어 욥의 모든 소유를 쳐보십시오. 욥은 반드시 당신 면전에서 욕을 할 것입니다.”
신은 사탄의 내기를 받아들여 욥의 아들 일곱과 딸 셋의 목숨을 빼앗고 수많은 가축을 강탈한다. 욥은 하루아침에 자식과 재산을 모두 잃는다. 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욥의 몸에 재앙을 보낸다. 욥은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온몸에 종기가 나 피부가 짓물러 터지고 구더기가 끓는다. “욥은 잿더미에 앉아서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었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 욥은 자기가 세상에 태어난 날을 저주한다. “내가 태어난 날이여, 차라리 사라져 버려라. 내가 어찌하여 모태에서 죽지 아니하였으며, 나오면서 숨지지 아니하였는가? 두려워하며 떨던 것들이 들이닥쳤고 무서워하던 것이 마침내 오고야 말았다.”
욥기는 유다왕국이 바빌로니아에 망해 백성이 바빌론으로 끌려간 뒤 기록된 글이다. 쫓겨난 유대인들이 노예처럼 살아야 했던 수난의 세월이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탄생시켰다. 욥기에는 기원전 6세기에 벌어진 그 수난을 암시하는 구절이 나온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악당에게 넘기시고 마침내 악인의 손에 내맡기셨구나. 평안을 누리던 나를 박살내시려고 덜미를 잡고 마구 치시는구나. 나를 과녁으로 삼아 세우시고 사방에서 쏘아대시는구나.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나의 창자를 터뜨리시고 쓸개를 땅에 마구 쏟으시다니….”
죽음보다 못한 고통 속에서 욥은 왜 자신이 그런 재앙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어야 하는지 하늘에 묻는다. 자신의 죄 없음을 입증해줄 재판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은 욥의 물음과 항변에 답하지 않는다. 세상을 세우기도 하고 벌주기도 하는 무한한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과시함으로써 욥의 입을 막아버릴 뿐이다. 욥은 침묵을 강요당한다. “무슨 할 말이 더 있겠습니까? 손으로 입을 막을 도리밖에 없습니다.” 욥기를 읽어가는 독자는 오늘의 이 현실에서 욥이 누구인가 묻게 된다. 욥의 후손인 이스라엘 사람들인가, 자기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인가.
팔레스타인이 지난 70여년 동안 겪은 재앙의 근원을 찾아가다 보면, 영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서구의 탐욕에 가닿는다. 시오니스트 유대인들이 20세기에 들어가 살기 전에도 그 땅에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이 살고 있었다. 두 민족은 이슬람 통치 아래서 1300년 동안 공존했다. 이슬람은 무슬림과 유대인을 아브라함의 공동 후손으로 보았기에 이 이웃 민족을 배척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은 늙은 오스만 제국이 연합국에 패배해 제국이 해체된 뒤에야 팔레스타인은 증오의 땅으로 바뀌었다.
영국은 세계대전 중 맥마흔선언을 발표해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 독립국가 건설을 약속했다. 아랍인은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웠다. 이어 영국은 유럽 유대인들의 지지를 노리고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국가 건설을 약속하는 밸푸어선언을 내놓았다. 두 선언은 서로 충돌했다. 승리한 영국과 미국은 중동에 서방의 교두보를 확보하려고 아랍인들의 소망을 저버리고 유대국가 창설을 도왔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제국주의 서방에 배신당했다. 1948년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원주민 75만명을 몰아내고 그 땅에 이스라엘을 세웠다.
그때 팔레스타인 땅에서 추방당한 이들 중에, 훗날 ‘오리엔탈리즘’의 저자가 되는 어린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도 있었다. 사이드가 평생 잊지 못한 것은 자기 가족이 살다 쫓겨난 그 집에 독일 출신 유대인 철학자 마르틴 부버(1878~1965)가 들어와 살았다는 사실이다. 부버는 철학서 ‘나와 너’에서 ‘나’라는 존재가 인격이 되는 것은 ‘너’라는 존재를 인격으로 받아들일 때라고 말했다. 너를 통해서 나는 인간이 된다. 하지만 유대인이 국가를 창설할 때 그곳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인격으로 만나야 할 ‘너’가 아니었다. 부버가 ‘나와 너’에 맞세운 ‘나와 그것’의 ‘그것’이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사물처럼 버려지고 짓밟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존할 방안은 30년 전 오슬로협정으로 국제적 공인을 얻었다.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서명한 그 협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두 국가로 나란히 서서 평화롭게 살 길을 제시했다. 그 협정을 거부하고 혼란을 키운 것이 이스라엘 내부 극우세력이다. 라빈이 극우파에 암살당한 뒤 베냐민 네타냐후가 그 극우세력을 등에 업고 집권했다. 이스라엘 인구의 13%를 차지하는 초정통파 유대교 근본주의 세력이 극우파의 중심에 있다.
이 근본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어떤 형태의 타협도 거부한다. 이 초정통파가 신봉하는 ‘모세오경’(토라) 가운데 ‘신명기’야말로 가장 편협하고 파괴적인 이스라엘 신의 출현을 담은 문서다. 여기서 모세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야훼에게만 복종할 것을 요구한다. “주위에 있는 백성들이 섬기는 신들 가운데서 어떤 신이든지 그 신을 따라가면 안 된다.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화를 내시어 너희를 땅 위에서 쓸어버릴 것이다. 너희 가운데 계시는 너희 하느님 야훼는 질투하는 신이시다.”
신명기의 이스라엘 신은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의 신, 정복욕에 불타는 파괴의 신이다.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이제 너희가 들어가 차지하려는 땅에 너희를 이끌어 들이시고 인구가 많은 민족들을 너희 앞에서 모조리 쫓아내실 것이다. (…)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는 그들을 너희 손에 붙여 꺾으실 것이다. 그때 너희는 그들을 전멸시켜야 한다. 그들과 계약을 맺지 말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
이 신명기가 출현한 때는 유다왕국이 멸망의 위기에 처한 기원전 7세기 말이었다. 민족 절멸의 불안 속에서 야훼라는 신을 구심점으로 삼아 왕국의 백성들을 결집하려고 쓴 것이 신명기다. 증오로 이글거리는 신명기의 그 언어는 두려움의 산물이다. 신명기의 그 신이 ‘여호수아’에 다시 등장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신명기의 명령을 그대로 집행한다. 성서의 문장에는 피의 강이 흐른다. “숨 쉬는 것이면 모조리 칼로 쳐 죽였다. 코에 숨이 붙어 있는 것은 하나도 살려두지 않았다.”
그러나 구약성서에 이런 살벌하고 배타적인 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민족을 치기 전에 먼저 불의한 이스라엘을 벌하고, 부족적 편협성을 넘어 정의로운 보편성을 추구하는 신도 있다. 구약성서는 폭력적인 원시적 신에서 자비로운 도덕적 신으로 변모하는 신의 자기 진화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금 이스라엘의 정치를 극단으로 몰아가는 근본주의 세력은 이 관대하고 개방적인 신이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상상한, 복수심으로 뭉친 부족주의 신을 섬긴다. 이런 신앙을 고집하는 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땅에 평화는 올 수 없다.
이스라엘 인구 구성의 추이를 보면 이 극단적 유대근본주의 세력의 비율은 날로 늘어나고 건전한 당파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줄어들고 있다. 근본주의가 득세할수록 충돌과 폭력의 강도는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뻔한 미래를 막으려면 이스라엘 시민이 극우파 정권을 심판하고 오슬로협정의 정신으로 돌아가 유대인과 무슬림이 공존하는 길을 내야 한다. 미국이 지금처럼 이스라엘 극우정권을 비호한다면 인권 중시라는 미국의 외교 원칙은 자가당착이 되고 아랍과 세계 전역의 반미 물결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고명섭
책지성팀 선임기자. ‘하이데거 극장-존재의 비밀과 진리의 심연’(1, 2), ‘니체 극장-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생각의 요새’, ‘광기와 천재-루소에서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지식의 발견-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 ‘이희호 평전-고난의 길, 신념의 길’을 썼다. 카이로스는 때·시기·기회를 뜻하며 현재를 밝히는 순간의 섬광을 가리킨다. 카이로스의 눈으로 철학·사상·역사를 포함한 인문학을 탐사하며 우리 시대와 대화한다.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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