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계 “가습기살균제 과학적 근거 명백…기업에 면죄부 주는 판결 안 돼”

허지윤 기자 2023. 11. 7.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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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처럼 과학적 근거가 명백한 물질에 대해서조차 제조 판매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유해물질로부터 우리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을까 묻고 싶다."

6개 학회 과학자들은 "(1심 재판부가) 가습기살균제와 건강 피해 사이의 인과적 관련성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과학적 근거들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사실뿐 아니라 우리 과학인들의 언어마저도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와 합의를 돕는 것이 실패한 점에서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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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의학·직업환경의학 등 6개 학회
항소심 앞두고 공동 입장 발표
“1심 재판부 증거 곡해 실망”
10월 26일 서울고법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 가해 기업 유죄 선고를 호소하는 피해자·시민사회단체가 모여있다. /연합뉴스

“가습기살균제처럼 과학적 근거가 명백한 물질에 대해서조차 제조 판매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유해물질로부터 우리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을까 묻고 싶다.”

국내 의학·환경·보건학계가 7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살균제 형사재판 항소심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이는 대한예방의학회, 대한직업환경의학회, 한국역학회, 한국환경보건학회, 한국환경법학회, 환경독성보건학회 등 6개 학회의 공동 입장이다. CMIT/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 재판의 2심 판결을 앞두고, 과학자들의 의견을 재판부가 잘못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려는 취지가 깔렸다.

이날 회견을 통해 6개 학회는 “재판부는 가습기살균제를 제조·유통·판매한 SK케미칼, 애경, 이마트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6개 학회 소속 과학자들은 “1심 무죄 판결과 관련해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과학적 근거들이 무시했다”고 비판하면서 그동안 밝혀진 연구 결과들을 소개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CMIT/MIT 등의 물질이 간질성 폐렴과 천식이 발생하는 하기도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또 흡입독성시험을 통해 용량에 상관없이 2주라는 비교적 짧은 노출 시간에도 건강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국민건강보험 빅데이터를 활용한 역학 연구에서는 CMIT/MIT 사용자들의 가습기살균제 사용 전후 5년을 비교한 결과 천식 발생이 5배, 천식으로 인한 입원 발생이 10배가 증가했다는 객관적 사실도 입증됐다.

1심 재판부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가해 기업에 면죄부를 줬다는 게 학계 안팎의 지적이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2021년 1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 임직원 등 13명에 대해 무죄 선고를 내렸다.

가습기살균제 독성물질 가운데 CMIT/MIT와 폐질환·천식 간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가 내린 무죄의 이유였다. 하지만 학계는 재판부가 과학자들의 증언과 증거를 곡해하고 취사 선택해 판결을 내렸다는 입장이다.

6개 학회 과학자들은 “(1심 재판부가) 가습기살균제와 건강 피해 사이의 인과적 관련성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과학적 근거들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사실뿐 아니라 우리 과학인들의 언어마저도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와 합의를 돕는 것이 실패한 점에서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가습기살균제 폐손상과 천식의 조사 판정에 있어 CMIT/MIT를 포함한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것으로 인정할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확보됐다”며 “이후 사법적 판단에 있어서 원인 제공자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판단이 다시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달 26일 검찰은 서울고법에서 열린 2심 결심 공판에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에게는 각각 금고 5년, 함께 기소된 애경산업·SK케미칼·이마트 관계자 등 11명에게는 금고 3∼5년을 구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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