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I·양자컴에 쓰이는 '헬륨' 가격 급등 우려 커져
거의 100년 동안 세계 최대의 헬륨 공급자 역할을 해 온 미국 연방 정부가 안정적인 헬륨 공급에서 손을 떼려하고 있다. 앞서 비용을 회수할 목적으로 90년대부터 광대한 지하 가스 저장소를 비우기 시작한 미국 정부는 최근 미국국토관리국(BLM)의 대규모 헬륨 저장시설을 매물로 내놨다. 내년 초 미국 텍사스주 소재 ‘애머릴로 시설’에 대한 매각 입찰에 나설 계획이다.
이 시설에는 헬륨을 얻기 위한 다공성 암석층과 유통 파이프라인이 구축돼 있다. 헬륨은 자기공명영상(MRI) 기기에서 양자컴퓨터까지 다양한 첨단기기에 사용된다. 과학계는 미국 정부의 이번 시설 매각이 연구개발(R&D)과 산업계에 두루 영향을 미칠 것이라 우려했다.
7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압축가스협회(CGA)는 반도체, 의료, 항공우주 부문을 대표하는 단체들과 함께 미 연방 정부의 이번 저장시설 매각이 필수적인 헬륨 공급에 차질을 빚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과학자들은 최근 미 정부가 연방 자금 지원을 받는 연구자들에게 할인된 가격으로 헬륨을 판매하는 프로그램의 종료를 결정한 점도 언급했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종종 헬륨 가격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물질의 구조를 연구하기 위해 핵자기공명 기계를 사용하는 소피아 헤이즈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연구원은 “미 연방 정부의 매각이 과학자들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고 전했다.
헬륨은 공기보다 가벼울 뿐만 아니라 반응성이 매우 낮아 컴퓨터 칩과 같은 민감한 제품을 제조하는 데 유용하다. 영하 269도까지 얼릴 수 있어 양자컴퓨터와 자기공명영상(MRI) 기기 내부의 초전도 자석을 냉각하는 데 필수적이다. 군용 비행선과 우주탐사선 운영에도 사용된다.
문제는 지구에 헬륨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헬륨은 지각 깊은 곳에서 우라늄과 토륨의 방사성 붕괴를 통해 형성되는데 이 중 일부만이 천연가스 매장지와 동일한 암석에 갇혀 있어 추출이 가능하다. 지난 여름 국내외 과학계를 들썩이게 한 상온 초전도체가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도 헬륨의 사용량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미 연방 정부의 시설 매각 추진이 헬륨 가격 급등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헬륨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미국 연방 정부는 100년 전부터 헬륨을 비축하기 시작했다. 90년대 들어 미 의회는 헬륨 비축에 너무 많은 비용을 지출했다고 판단하며 정부에 헬륨을 직접 팔도록 지시했다.
미 국토관리국이 헬륨을 낮은 가격에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민간 기업은 헬륨 사업을 확장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오늘날 헬륨은 주로 미국, 카타르, 알제리, 러시아 등 4개국에서만 생산되며 소수의 다국적 기업에 의해 유통된다.
현재도 헬륨은 제한된 수의 공급업체와 수요 증가로 가격 변동성이 극심하다. 지난해 러시아 헬륨 공장에서 폭발이 발생하고 미국에서도 5개월간 추출을 중단하면서 공급 부족이 심화됐을 때 시장가는 급격히 상승했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당시 고품질의 헬륨 가격은 입방미터(큐빅미터)당 약 11달러(약 1만4371원)로 10년 전 6달(약 7839원)러 대비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전문가들은 시장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세계 유일의 대규모 헬륨 저장시설을 운영하는 미 연방 정부가 헬륨 가스를 시장에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석유 가격 오름세에 대처하기 위해 미 정부가 전략비축유를 풀었던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제니 셰르막 뉴멕시코대 교수는 "헬륨 저장고를 미국이 매각하면 시장에 더 많은 불확실성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미국 납세자나 국가에 최선의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미 연방 정부가 공급하는 헬륨에 의존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체할 프로젝트도 추진됨에 따라 수년 내로 헬륨 부족이 완화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러시아와 카타르에는 대규모 공장이 가동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헬륨 확보를 위한 미 와이오밍주의 새로운 프로젝트가 투자자의 지지를 얻었다. 민간 기업 중에선 캐나다 기업인 ‘아반티헬륨’이 헬륨을 포함한 화산 가스로 채워져 있는 몬태나의 지층을 목표로 헬륨 탐사에 나섰다. 이 회사는 내년 초 첫 공장을 가동할 계획이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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