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근거 명확한데도 SK·애경이 무죄라면, 앞으로 어떻게 유해물질로부터 생명을 지킬 수 있나”

김기범 기자 2023. 11. 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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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법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 가해 기업 유죄 선고를 호소하는 피해자ㆍ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가습기살균제처럼 과학적 근거가 명확한 사안에서도 가해기업이 무죄라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을까 묻고 싶다. 2심 재판부는 가습기살균제를 제조, 유통, 판매한 SK케미컬, 애경, 이마트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해야한다.”

대한예방의학회, 대한직업환경의학회, 한국역학회, 한국환경보건학회, 한국환경법학회, 환경독성보건학회(가나다순) 등 국내의 의학·환경·보건 관련 6개 학회는 7일 오전 서울 시청앞 달개비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살균제 형사재판 항소심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1심 재판부가 석연치 않은 근거로 가해기업들에 면죄부를 줬던 CMIT/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 재판의 2심 판결을 앞두고, 재판부가 과학자들의 의견을 잘못 받아들이지 않도록 미리 입장을 밝히려는 취지로 마련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2021년 1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 임직원 등 13명에 대해 무죄 선고를 한 바 있다. 가습기살균제 독성물질 가운데 CMIT/MIT와 폐질환·천식 간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에 대해 재판의 증인으로 나섰던 이들을 포함한 과학자들은 재판부가 자신들의 증언을 곡해하고, 증거를 취사선택하면서 과학자들의 의견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해 왔다. 과학자들은 당시에도 이미 CMIT·MIT가 폐질환을 일으킬 가능성이 충분히 증명되었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가 지난달 26일 오전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사태 관련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회견에서 6개 학회 소속 과학자들은 1심 무죄 판결과 관련해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과학적 근거들이 무시했다고 비판하면서 국민건강보험 빅데이터를 이용한 역학적 연구를 포함해 그동안 밝혀진 연구 결과들을 소개했다.

6개 학회 과학자들은 “국민의 안전과 건강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임을 자부하여 왔던 우리 과학인들은 지난 2021년 1월 CMIT/MIT 가습기살균제 소송 1심의 무죄 선고를 접하고 큰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며 “가습기살균제와 건강피해 사이의 인과적 관련성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과학적 근거들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우리 과학인들의 언어마저도 사회구성원들의 이해와 합의를 돕는 것에 실패하였다는 것이 드러난 점에서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지난 3년 사이 가습기살균제의 건강피해 여부에 대한 더 많은 독성학적 연구들이 진행되었다”며 그동안 추가로 밝혀진 새로운 연구결과들을 소개했다. 과학자들은 먼저 이 물질이 간질성 폐렴과 천식이 발생하는 하기도에 도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연구 결과와 용량에 상관없이 2주라는 비교적 짧은 노출 시간에도 건강 영향이 나타날 수 있음이 확인된 최근의 흡입독성시험 등에 대해 소개했다. 역학연구에서는 국민건강보험 빅데이터를 통해 CMIT/MIT 사용자들의 가습기살균제 사용 전후 5년을 비교한 결과 천식 발생이 5배, 천식으로 인한 입원 발생이 10배가 증가하였다는 객관적 사실도 새로 입증된 사실도 언급됐다.

지난달 26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법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 가해 기업 유죄 선고를 호소하는 피해자ㆍ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은 “가습기살균제 폐손상과 천식의 조사판정에 있어 CMIT/MIT를 포함한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것으로 인정할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확보되었다”며 “이후의 사법적 판단에 있어서 원인 제공자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판단이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과학자들은 “국가적으로 많은 생명과 건강을 앗아간 이 물질을 제조, 판매하고 충분한 과학적 근거도 없이 아이에게도 안전하다는 광고로 국민을 위험에 빠뜨린 제조사들은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며 “이처럼 과학적 근거가 명백한 물질에 대해서조차 제조 판매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유해물질로부터 우리의 가족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을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달 26일 검찰은 서울고법에서 열린 2심 결심 공판에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에게는 각각 금고 5년, 함께 기소된 애경산업·SK케미칼·이마트 관계자 등 11명에게는 금고 3∼5년을 구형했다. 피해자들은 이 같은 구형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회견에서 “2심 소송의 판결을 앞두고 우리 6개 환경보건 및 의학, 환경법학회는 그간 축적된 CMIT/MIT 성분의 가습기살균제 노출과 건강피해 간 과학적 근거가 사법적으로 충분히 고려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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