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의 눈물과 화해…피를 잉크로 쓴 문장들
'가자에 띄운 편지' '사소한 일'
팔레스타인 고통과 억압 담아
아모스 오즈 '사랑과 어둠…'
유대인 작가의 평화주의 응축
전쟁 속 희생자는 결국 개인
익명의 죽음으로 사라져가
감옥에서 무덤으로 변한 가자지구, 핏빛 붕대의 아이들 사진, '사망자 1만명'이란 뉴스 앞에서 느끼는 먹먹함은 불가피한 우리네 감정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영원히 종지부를 찍을 수 없는 걸까. 하지만 그에 앞서 이·팔 갈등의 화해를 모색했던 책은 다수였다. 피를 잉크로 쓴 이들 소설 속 문장 한 줄에, 현재의 갈등을 해결할 열쇠가 숨겨졌을지도 모른다. 중동의 고통을 이해하고 미래를 그렸던 책들을 모아봤다.
발레리 제나티의 '가자에 띄운 편지'는 가자지구의 기초적 이해를 돕는 세계적 작품이다. '이·팔 전쟁 개론서'에 가까운 소설로, 2006년 한국 첫 출간 후 2017년 재출간될 정도로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 주인공은 소녀 탈. 양측이 서로를 '승인'했던 1993년 오슬로 협정 이후 10년이 지난 2003년이 배경이다. 소녀 탈은 군간호사로 근무하는 오빠에게 가자지구 앞바다에 편지를 넣은 병을 던져달라고 요청한다.
가자지구 바다는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고 조업구역이 아니면 멀리 나갈 수 없다. 그들에겐 바다도 자유의 공간이 아니다. 그러나 탈의 '희망의 편지'는 팔레스타인 소년 나임에게 전해지고, 둘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가까워진다. 어린아이들은 이미 고통과 환멸을 온몸으로 교육받았다. "중요한 건 그 사람들이 각자 하나의 개체로 존재한다는 걸, 익명의 존재가 아니란 걸 인식하는 거야"란 편지 문장은 전쟁 사망자들의 개별적 목숨을 떠올리게 한다.
'희망 없음 속의 희망'을 그린 소설로는 엘리자베스 레어드의 '한 뙈기의 땅'을 회고할 만하다. 소설 배경은 예루살렘 북쪽 15㎞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임시행정수도 라말라 지역이다. 소년 카림 아부디의 꿈은 여럿이지만 그중 1번은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9번 꿈을 달성해야 한다. '9번. 살아남기, 혹은 총에 맞더라도 치료가 가능한 부위여야 함.'
이 지역은 통금이 엄격하지만, 통금시간만 지나면 카림의 작은 땅은 축구경기장으로 변한다. 레어드는 영국 여성 작가로, 라말라로 아예 이민을 가는 등 중동 분쟁을 곁에서 지켜봤다. 이스라엘의 압력으로 이 책은 한때 금서 지정이 유력했으나 결국 출판돼 세계 독자를 만났다.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이야기한 이스라엘 작가도 있었다. 아모스 오즈는 시온주의 가정 출생의 유대인이면서도, 공생을 주장한 평화주의자였다. 배우 내털리 포트먼의 감독 연출작이기도 한 소설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는 클라우스너 일가가 홀로코스트 이전에 이스라엘로 이주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대인이 겪은 인류사적 핍박, 역사 속 인간의 표정, 그리고 고통의 무게를 질문한다.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주제는 '천국도 지옥도 인간의 선의에 달려 있다'로 요약될 것이다. "지옥이 뭐냐? 천국은 뭐고? 분명 그 모든 것이 우리 안에 있단다. 모든 방에서 너희는 지옥과 천국을 발견할 수 있을 게다. 모든 문 뒤에. 두 겹 담요 아래. 작은 사악함으로 사람은 사람에게 지옥이 되지. 작은 연민, 작은 관대함으로 사람은 사람에게 천국이 되고"란 문장이 유명하다. 작가 오즈는 팔레스타인 최고 지도자 마르완 알 바르구티에게 이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2023년 11월 현재, 가장 논쟁적인 이·팔 전쟁 관련 소설은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 '사소한 일'이다. 한국에선 강출판사에서 올해 7월 출간됐는데, 공교롭게 이·팔 전쟁이 발발하자 더 주목받았다. 10월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 상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전쟁이 하마스에 의해 촉발됐다'는 이유로 수상이 취소돼 더 논쟁적이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작가들이 비판 성명을 앞다퉈 낼 정도였다.
소설 '사소한 일'은 70만명 팔레스타인인이 추방됐던 1948년 참극(일명 나크바)으로부터 1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한 팔레스타인 소녀가 강간당한 뒤 다음날 아침 총살돼 사막에 매장당했다. 망각된 그 일은 전혀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25년 뒤 한 여성이 그 사건을 파헤치는 '도정'을 시작한다.
이스라엘 작가 다비드 그로스만의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는 전쟁에 동원되는 이스라엘 아이들의 심리를 풍자적 문체로 담아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도발레가 '전쟁 대비 훈련'을 받으면서 당했던 괴롭힘에 대해 토로한다. 박찬욱 감독이 6부작 시리즈로 제작했던 스파이 소설 거장 존 르 카레의 '리틀 드러머 걸'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성 배우 찰리가 '팔레스타인 스파이'가 돼 테러리스트를 연기한다.
지뢰를 묻으려 했다는 모함에 시달리다 저항투사가 되는 팔레스타인 형제 이야기를 다룬 사하르 칼리파의 '뜨거웠던 봄', 이스라엘 번역가와 팔레스타인 화가의 밀애를 다룬 도리트 라비니안의 'All The Rivers'도 화염 속 인간을 가로지르는 문학적 분석서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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