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무덤’ 된 가자…“서방이 ‘하마스 2.0’ 만들고 있다”
이스라엘 편드는 서방에 ‘글로벌사우스’ 분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전쟁으로 인한 가자지구 사망자가 1만명을 넘은 가운데, 어린이와 여성을 가리지 않는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에 눈을 감는 서방 국가들의 이중적 태도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한달째를 맞은 지난 6일 가자지구 사망자가 1만명을 넘었고 이 중 4천명 이상은 아이들이라고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 발표가 나온 다음 날인 7일 “가자지구가 아이들의 무덤이 되어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가자지구 사망자 대다수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맹폭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서방 국가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직접적 비판은 꺼리고 있다. 이는 지난해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 때와는 사뭇 다르다. 서방은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해서는 ‘인도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내세워 민간인 희생이 잇따르는 문제를 놓고 전쟁 당사자인 두 나라를 나란히 강하게 압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난달 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 먼저 민간인을 대량 살해하며 도발한 하마스는 강력히 규탄했지만, 이후 보복에 나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민간인들 대규모 사상을 초래하는 군사작전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미온적 태도를 보인다. 일부 아랍 지도자들은 지난달 21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평화 회의 때 “러시아는 인도주의 위반으로 비난받았는데, 이스라엘이 그렇지 않은 것은 (서방 국가들의) 위선”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7일 미국과 유럽의 이런 태도에 대해 “유럽 정상들이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지원과 필요성에 대해 발언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에 직접 따지는 일은 거의 없다”며 “최근 몇 년간 중동 평화에 적극적이었던 이들이 이번 전쟁에서 공정한 중재자로서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고 짚었다.
서방 주요국의 이런 태도는 유럽 내 무슬림 주민들을 향한 혐오 확대를 조장해 유럽사회 분열의 원인도 제공하고 있다. 한 벨기에 무슬림 주민은 “이스라엘을 비판하거나 팔레스타인에 우호적 발언을 했다가는 친테러리즘이라든가 반유대주의라고 점찍히는 게 지금의 유럽사회 분위기”라며 “인도주의는 강자의 편의에 의해서만 적용된다”고 꼬집었다. 노골적으로 이스라엘편을 들어온 미국 처지도 다르지 않다.
서방의 이런 태도는 결국 자신들에게 ‘독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유럽국가들은 새로운 자원 공급망이자, 미-중 패권 경쟁에서 지정학적 중요성이 커진 ‘글로벌사우스’(북반구 저위도나 남반구의 아시아·아프리카·남미·오세아니아 신흥국) 국가들에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이번 전쟁을 거치며 글로벌사우스 국가들 사이에 서방의 정책은 결국 ‘힘이 정의’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결국 서방 국가들에 등을 돌리게 하고 있다. 전쟁 초기만 해도 글로벌사우스 국가들 역시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비판한 서방과 균열을 일으키지 않았지만, 이후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가 극심해지는 데도 이스라엘의 자위권만 강조하는 서방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를 두고 “이번 전쟁에서 서방이 가자지구에서 잃어버린 건 ‘글로벌 사우스’”라고 지적했다.
서방 지원을 등에 업고 일방적 전쟁을 벌이는 이스라엘도 결과적으로 ‘지는 싸움’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분석도 있다. 이번 전쟁 뒤 글로벌사우스의 일원인 칠레, 콜롬비아, 볼리비아 등이 이스라엘의 국제 인도법 위반을 이유로 관계를 단절하거나, 자국 주재 대사를 소환해 강하게 항의했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이스라엘 총리가 파괴하고 싶어하는 곳에는 여성과 어린이도 있다"고 비난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히샴 헤일러 박사는 엔비시(NBC) 방송에 민간인까지 대량 살상하는 이스라엘식 보복으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런 방식은 더 깊은 악순환을 만들어 ‘하마스 2.0’을 만들거나, 아직 한번도 보지 못한 더 나쁜 것을 만들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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