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 인식표 찬 팔 노동자들 “이스라엘, 개처럼 가두고 구타”
이스라엘군 불법 구금·학대 증언
지난달 7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이 시작된 후, 이스라엘에서 일하던 가자지구 출신 팔레스타인 노동자 수천여명이 사라졌다. ‘증발’이라고 표현될 만큼 행방이 묘연했던 이들은 그로부터 27일이 흐른 지난 3일, 국경을 넘어 가자지구로 돌아왔다. ‘전쟁터’가 된 고향으로 추방된 이들의 발목에는 하나같이 숫자가 쓰인 플라스틱 인식표가 매달려 있었다. 이들은 그동안 어디에 있었을까.
이스라엘 정부가 전쟁 발발 후 자국 내에서 일해온 가자지구 출신 노동자들을 수용시설에 불법 구금하고 고문과 구타 등 가혹행위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들은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노동 허가를 얻어 합법적으로 체류하며 건설업·농업 등에 종사해온 노동자들로, 범죄 혐의점이 없는데도 ‘가자지구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불법 구금됐다는 것이다.
6일(현지시간) CNN과 알자지라 등 보도에 따르면 엄격한 보안 심사를 거쳐 이스라엘에 입국했던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은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되자 박해를 받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이스라엘 언론이 노동허가증을 받은 팔레스타인인 가운데 하마스 관련자들이 포함돼 있을 수 있다고 보도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들의 체류 자격과 노동 허가를 정지시켰고, ‘불법 체류’를 명분으로 이들을 구금하기 시작했다. 일부 노동자들은 국경 폐쇄로 가자지구로 돌아갈 방법이 막히자 요르단강 서안지구로 향했으나, 이들 역시 체포됐다.
주민들의 신고로 체포돼 구금시설에 갇혔던 쿠벨 압둘라 알라디아는 CNN에 “군인들이 우리의 휴대전화와 돈을 빼앗았고, 가족과 연락도 취할 수 없었다”면서 “그들은 곤봉과 쇠몽둥이로 우리를 때렸다. 음식도 물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쟁 이틀째 체포된 또 다른 노동자 마흐무드 아부 다라베는 “그들은 우리를 개처럼 금속 우리에 가뒀고, 구타하며 모욕했다”면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발이 썩어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아프든 말든 신경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눈이 가려진 채 손발이 묶인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속옷 차림이거나 알몸인 상태로 엎드려 있고, 일부 군인들이 이들을 발로 차거나 끌고 다니는 모습이 찍힌 복수의 영상이 올라 왔다. 이스라엘 당국은 문제의 영상 가운데 최소 2개는 사실이라고 CNN에 확인했다.
상당수 노동자들은 눈을 가린 채 버스에 태워져 어디에 구금됐는지 알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서안지구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팔레스타인 포로협회는 이스라엘군이 이들을 서안지구 오페르와 살렘에 위치한 두 개의 수용시설에 분산 수감했다고 밝혔다. 이 단체의 대변인 아마니 사라네는 “구금된 노동자들에게 어떤 범죄 혐의점도 없었다”면서 “이들 중 상당수가 조직적으로 고문과 학대를 당했으며 온갖 종류의 비인간적 모욕을 당했다”고 말했다. 일부 노동자들은 모든 소지품이 압수된 채 20일 넘게 속옷 차림으로 지내야 했다.
전쟁 전까지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출신 1만8500여명에게 자국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발급했다. 전쟁 발발 이후 이들 가운데 수천여명이 체포됐고 상당수는 실종된 상태다. 알자지라는 서안지구 소식통 등을 인용해 지난달 7일 이후 서안지구에 발이 묶인 가자지구 출신이 5500여명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수감시설에서 구타와 고문으로 일부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다라베는 “그들은 고향에 있는 가족에 대해 묻는다며 우리를 매일 심문했고, 친척 중에 하마스 관리가 있으면 구타당했다”면서 “어떤 이들은 고문 도중 사망했고, 일부는 구타와 전기고문을 당한 뒤 가자로 돌아오는 길에 죽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당국도 군인들의 학대 사실을 일부 인정했다. 이스라엘 보안당국 관계자는 CNN에 “공식 구금시설 밖에서 구금자들을 학대하는 사례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관련자들은 징계 조치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팔레스타인 노동자에 대한 가혹행위로 군인 4명이 해고됐고 2명이 수감됐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구금 과정에서 사망한 노동자가 있느냐는 질의에는 “두 명이 사망했지만, 이는 학대가 아니라 구금자 개인의 만성적인 건강 문제 때문”이라고 책임을 부인했다.
이스라엘 인권단체들도 불법적인 구금과 가혹행위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스라엘 6개 인권단체는 이스라엘 정부의 가자 출신 노동자 구금이 “법적 권한도 근거도 없다”며 이스라엘 고등법원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청원을 주도한 인권단체 기샤는 최근 성명을 내고 “극도로 열악한 구금시설에서 수감자들은 비인간적 대우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신체적 폭력과 정신적 학대를 당했다”고 비판했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베첼렘 대변인 드로르 샤도트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비인간화’는 이스라엘 최고 권력층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인이 ‘인간이 아니다’라고 공공연하게 말해왔으며, 이런 생각이 하급 군인들에게도 흘러 들어가 가혹행위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는 전례에 비춰봤을 때 군인들의 가혹행위가 제대로 처벌되거나 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때 이런 상황은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쟁터’ 된 고향으로 쫓겨난 사람들···“돌아와서 기쁘다”
20여일의 구금 끝에 가자지구로 돌아온 노동자들은 한 달간 이어진 전쟁으로 “지상의 지옥”이 된 고향과 마주했지만 오히려 “돌아와서 기쁘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정부의 ‘강제 추방’ 발표 24시간 만인 지난 3일 이스라엘과 접한 케렘 샬롬 검문소를 통해 가자지구로 돌아온 이들은 고향을 땅을 밟은 뒤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거나 눈물을 터뜨렸다.
이날 귀환환 수백여명의 노동자 중 대부분이 입고 있는 옷 이외에 개인 소지품이 없었으며, 손목과 발목 등에 이스라엘군이 채운 플라스틱 인식표를 달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이스라엘 당국이 자신들을 버스에 태워 가자지구로 향하는 교차로에 내려주었고, 그곳에서 3시간 가량 걸어 국경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빌랄 아이샤는 “우리는 그곳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매일매일이 사형선고와 같았다”며 “돌아올 수 있게 돼 신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이스라엘 당국은 치료 목적으로 동예루살렘 등의 병원에 입원해 있던 가자지구 출신 환자와 보호자들도 최근 ‘불법 체류’를 이유로 체포했다고 알자지라가 이날 보도했다. 이들은 전쟁 전 이스라엘 당국으로부터 치료 목적의 입국 허가를 얻었으나 전쟁 후 발이 묶였고,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지구 출신 주민들의 의료 허가를 정지시킨 뒤 이들을 체포한 것으로 전해졌다.
https://www.khan.co.kr/world/mideast-africa/article/202311031234001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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