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기 지나고도 오래 사는 건 인간만이 아니었다 [강석기의 과학풍경]

한겨레 2023. 11. 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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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 포유류 가운데 인간의 암컷, 즉 여성만이 폐경기가 지나도 꽤 오래 생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체가 번식 기계라는 관점에서는 설명하기 곤란한 이 현상을 두고 20세기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조지 윌리엄스는 훗날 '할머니 가설'로 불리게 될 기발한 해석을 제시했다.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침팬지도 야생에서 50살 전후에 폐경기를 겪고 그 뒤 꽤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폐경기 존재 이유를 할머니 가설로 설명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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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풍경]

무화과 열매를 따 먹고 있는 침팬지 모녀. 앨런 호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육상 포유류 가운데 인간의 암컷, 즉 여성만이 폐경기가 지나도 꽤 오래 생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체가 번식 기계라는 관점에서는 설명하기 곤란한 이 현상을 두고 20세기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조지 윌리엄스는 훗날 ‘할머니 가설’로 불리게 될 기발한 해석을 제시했다. 고령 출산은 그 자체로 위험하고 긴 양육기간 도중 늙은 엄마가 죽을 가능성도 크기에 50살 무렵부터 임신할 수 없게 진화했다는 것이다. 대신 남은 인생은 자식의 아이, 즉 손주를 돌보며 사는 게 전체적으로 번식에 유리하다.

그런데 지난달 학술지 ‘사이언스’에 할머니 가설의 전제를 뒤집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침팬지도 야생에서 50살 전후에 폐경기를 겪고 그 뒤 꽤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여러 야생 침팬지 관찰 연구에서 나온 ‘침팬지는 폐경기가 없는 것 같다’는 결론과 배치된다.

우선 왜 이번 연구 결과가 이전 결과들과 다르게 나왔을까. 독일과 미국 공동연구자들은 우간다 키발레국립공원 응고고 지역은 진정한 야생 조건에 가까운 반면, 기존 연구 대상 지역들은 사람과 접촉이 많아 전염병 유입 등 여러 요인으로 침팬지가 수명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응고고 지역 야생 침팬지 무리를 무려 21년 동안 관찰했다. 그 결과 사람과 마찬가지로 30살이 넘으면 임신 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대부분 40살 전후에 마지막 새끼를 낳았다. 암컷 침팬지의 소변을 받아 호르몬 수치를 분석한 결과 50살을 분기점으로 사람의 폐경기 전후와 같은 패턴을 보였다.

응고고(Ngogo) 침팬지와 기존 다른 지역의 침팬지(Non-Ngogo)의 나이에 따른 생식력(왼쪽)과 생존율(오른쪽)을 비교한 그래프다. 생식력 변화 패턴은 차이가 없지만 생존율은 큰 차이를 보여 응고고 무리에서 침팬지 폐경기가 명쾌하게 확인됐다. 사이언스 제공

응고고의 야생 침팬지 암컷은 폐경 뒤 평균 10년 정도 더 살았다. 이는 수렵채집인 여성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그런데 인간과 달리 폐경 뒤 침팬지 암컷은 손주 침팬지를 돌보지 않고 무심하게 지낸다. 약 700만년 전 갈라진 사람과 침팬지는 여전히 같은 나이대에 폐경기를 겪기에, 둘의 공통 조상에서 같은 나이대에 폐경기가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폐경기 존재 이유를 할머니 가설로 설명하기 어렵다. 침팬지가 손주를 돌보지 않는 쪽으로 진화했다는 건 억지스럽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연구자들은 ‘번식투쟁 가설’을 내놓는다. 무리를 이루며 사는데 양육기가 길면 늙은 어미일수록 그 새끼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작다. 그럴 바에야 나이 들면 새끼를 가질 수 없게 진화해 자원을 쉽게 확보한 젊은 어미의 새끼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해석이다. 결국 손주를 돌봐 생존력을 높이는 건 인간 사회의 특성일 뿐이란 말이다.

포유류 수명을 보면 영장류가 긴 편이고 그 가운데 유인원이 좀 더 길고 그 가운데 사람이 가장 길다. 이는 유년기가 길어지고 전반적인 노화 속도가 늦어진 결과다. 이번 연구로 침팬지의 수명이 생각보다 긴 것으로 드러났지만, 그래도 사람이 여전히 10여년 더 길다(각각 야생(응고고) 및 수렵채집인 기준).

그럼에도 임신능력 저하 시작 시기와 폐경기 시기는 거의 똑같아 가임기는 사람이 침팬지보다 짧다. 흥미롭게도 노안이 시작되는 시기 역시 사람과 침팬지가 같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전반적인 몸의 노화가 늦어져 수명이 길어졌더라도 개별적인 특성 모두가 비례해 노화가 늦어지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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