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자 여사의 희생·봉사의 삶, 韓·日 잇는 가교”

유승목 기자 2023. 11. 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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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으로 태어났지만 한국인으로 생을 마치셨어요. 평생 장애인을 돌보며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았고요. 이방자 여사라는 이름은 자라나는 한·일 미래세대가 소통하고, 양국 관계가 갈등에서 협력으로 나아가는 가교가 될 겁니다."

정 이사장은 "1979년 창덕궁 낙선재 앞을 지나는데 곱게 옷을 차려입은 이 여사가 자선바자회를 열고 있었다"며 "당시엔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터라 괘씸한 마음이 들었지만 집으로 돌아와 알아보니 모진 고초에도 끝없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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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친왕비 환국 60주년 기념
특별전 여는 정하근 이사장
조선 궁중 예복 등 직접 만들고
바자회 수익, 韓 장애인에 기부
“한국인보다 한국 사랑했던 분
세계 장애인 협회서 공로 평가”
1980년대 미술작품 활동 중인 영친왕비의 모습.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일본인으로 태어났지만 한국인으로 생을 마치셨어요. 평생 장애인을 돌보며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았고요. 이방자 여사라는 이름은 자라나는 한·일 미래세대가 소통하고, 양국 관계가 갈등에서 협력으로 나아가는 가교가 될 겁니다.”

정하근(사진) 이방자여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창덕궁 낙선재를 배경으로 한 흑백사진에 담긴 이방자 여사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오는 8일 열리는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 환국 60주년 기념 특별전’을 앞두고 지난 3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정 이사장은 이 여사를 두고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梨本宮方子)라는 이름으로 일본 황족 가문에서 태어난 이 여사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 이은과 1920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내선일체’(內鮮一體·일본과 조선은 한 몸)를 선전하기 위한 정략결혼이었지만, 그는 이때부터 한국인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1945년 해방 후 이름을 한국어 발음인 ‘방자’로 고치고, 나시모토 성을 뗀 이유다. 대한민국 수립 후 ‘조선의 잔재’로 인식해 영친왕 부부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이승만 정권에서 귀국길이 막혀 무국적자 신세로 살았던 이 여사는 영친왕과 덕혜옹주의 어려운 형편을 살피게 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배려로 1963년 한국 국적을 얻어 환국한다.

창덕궁 낙선재에 자리 잡은 이 여사는 장애인과 소외계층의 삶을 돌보는 데 여생을 바쳤다. 일본에서 배운 금속 자개 공예의 일종인 칠보(七寶)를 들여왔고, 옛 궁인들의 조언을 받아 조선의 궁중예복과 혼례복 등을 직접 만들었다. 이후 작품 자선바자회와 후원금으로 얻은 수익으로 소아마비·정신지체 장애인을 위한 사회복지법인 ‘명휘원’, 지적장애 어린이 학교 ‘자혜학교’ 등을 세웠다. 정 이사장은 “1979년 창덕궁 낙선재 앞을 지나는데 곱게 옷을 차려입은 이 여사가 자선바자회를 열고 있었다”며 “당시엔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터라 괘씸한 마음이 들었지만 집으로 돌아와 알아보니 모진 고초에도 끝없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나라에서도 돌보지 않던 장애인을 데려와 기술을 가르쳐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했다”면서 “세계장애인협회나 기구에서도 이 여사의 공로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선 서예와 그림, 자수 등 정 이사장이 수집한 400여 점의 작품 중 이 여사가 직접 재현한 궁중 한복의상 등이 공개된다. 정 이사장은 “이 여사는 한국과 일본을 문화적으로 잇는 가교가 될 수 있지만 공적이 잘 알려지지 않아 안타깝다”며 “언젠가 이 여사의 기념관을 세워 양국 청소년들이 교훈을 얻고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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