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이 쓰는 징비록[뉴스와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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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제5회 중앙지방협력회의' 참석을 위해 경북 안동에 있는 경북도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철우 경북지사로부터 책 한 권을 받았다.
징비록은 서책으로는 드물게 국보(제132호)로 지정돼 있고, 전쟁이 발발한 원인부터 전쟁 과정 중 조정의 실책을 기록해 후세에 길이 남기도록 한 일종의 '반성문'이다.
"'혁신위 쇼' 두 달만 하면 된다"는 보고를 누군가 대통령에게 한다면 그것은 430년 전 김성일의 허위 보고와 무엇이 다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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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제5회 중앙지방협력회의’ 참석을 위해 경북 안동에 있는 경북도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철우 경북지사로부터 책 한 권을 받았다.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임진왜란 동안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기록한 ‘징비록’이었다. 징비(懲毖)는 ‘지난 잘못을 경계해 삼가다’는 뜻이다. 징비록은 서책으로는 드물게 국보(제132호)로 지정돼 있고, 전쟁이 발발한 원인부터 전쟁 과정 중 조정의 실책을 기록해 후세에 길이 남기도록 한 일종의 ‘반성문’이다. 이 지사가 대통령에게 이 책을 건넨 목적은 ‘지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한양에서 파견된 주인의식 없는 지방 관료들이 먼저 도망치자 지방부터 무너졌고, 20일 만에 한양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이 책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방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것 외에도 지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를 정말 제대로 돌이켜 보는 데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비록 기초단체장 선거였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중산층·무당층 등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민심 이반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긴 윤 대통령과 여권에 첫 패배를 안겨준 선거이기도 했다.
윤 대통령 스스로가 선거 이후 변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여당이 혁신위원회를 발족시켜 ‘협치’ ‘쇄신’ ‘희생’ 등의 메시지를 내기 시작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여권의 변화를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다. 여권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찐윤’ 이철규 전 사무총장을 19일 만에 인재영입위원장에 임명했다. 당내에서도 ‘친윤 감별사’를 뽑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수도권이 위기라는데 TK 출신의 사무총장을 앉혔다. 반성문의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
지금 여당의 징비록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보선 패배 이후 정치판을 ‘인요한의 시간’으로 만들고 있다. 당 지도부와 중진, 친윤(친윤석열)계 핵심 의원들을 정조준한 그의 ‘내년 총선 불출마 또는 수도권 험지 출마 결단’ 요구로 여당 내부는 요동치고 있다. 당 지도부는 물론 친윤 핵심 의원들 이름이 ‘희생’의 대상으로 거론되자 벌써 “월권”이라는 반발이 나온다. 쇄신론은 결국 용두사미가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200년 지속된 평화로 편안함에 익숙해져 있었던 조선은 왜군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위기를 고통스럽게만 생각할 게 아니라,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징비록’은 말해준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면 결과는 뻔하다. 당파싸움이 심했던 당시 임란 전 일본을 다녀와 왜군 침략 가능성을 언급한 서인 황윤길과 달리 반대파 김성일은 ‘민심이 흉흉해진다’며 조선 침략 가능성이 없다는 취지의 허위 보고를 올렸다. “‘혁신위 쇼’ 두 달만 하면 된다”는 보고를 누군가 대통령에게 한다면 그것은 430년 전 김성일의 허위 보고와 무엇이 다를까 싶다. 기득권들의 희생이 없으면 내년 선거는 해볼 필요도 없다. 내년 총선에서 200석을 꿈꾸는 더불어민주당 일부 인사의 발언이 허언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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