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놓칠라 ‘새로고침’ 베이징 라이더…25분 만에 9건 동시 배달

최현준 2023. 11. 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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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준의 DB deep]중국 라이더 장씨의 ‘배달 노동’ 동행취재
지난달 하순 중국 베이징에서 한 배달기사가 오토바이에 앉아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오늘은 평소보다 주문이 많이 없네요. 지금 오후 4시인데 아직 15건도 못 했어요.”

상가 앞 큰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1시간 가까이 스마트폰을 ‘새로고침’ 하던 30대 중국 배달기사 ‘장 선생’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이런 날이 없었는데, 오늘은 정말 심각한데요.” 출근한 지 6시간이 지났지만, 그는 평소 배달량의 3분의 2도 채우지 못했다. 배달 앱에 올라오는 주문들은 하나같이 거리가 멀고 요금은 싼 것들로, 5~6㎞를 달려야 고작 4~5위안(740~920원)을 손에 쥘 수 있는 것들이었다. 간혹 배달비가 비싼 주문이 올라왔지만, 화면에 뜨는 족족 사라졌다. 그보다 손이 빠른 젊은 친구들이 먼저 채 간 것이다.

지난달 말 베이징에서 일하는 경력 5년의 배달기사의 하루를 동행했다. 별도의 오토바이를 타고 그를 뒤쫓으며, 음식을 식당에서 받아 고객에게 배달하는 과정을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지켜봤다. 그는 자신의 사진을 내보내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아 취재를 허락했다.

휴대폰을 계속 들여다보던 장이 처음 움직인 것은 오전 10시30분께였다. 총 이동 거리 4.9㎞에 배달료 12위안(2220원), 제법 괜찮은 주문이었다. 그는 1㎞를 달려 근처 상가 식당에서 음식을 받고 약 4㎞ 떨어진 건물로 달렸다. 정문 앞 탁자에 음식을 올려둔 뒤, 고객에게 전화해 도착 사실을 알렸다. 22분 만에 첫 배달이 완료됐다.

이날 베이징 날씨는 최저 기온 6도로 평소보다 쌀쌀했다. 두꺼운 점퍼를 입고 마스크를 썼는데도 가을 바람이 찼다. 장은 익숙한 듯 마스크를 쓰지 않고, 시속 30~40㎞로 도로를 달렸다. “이건 맛보기였고요. 진짜 배달은 이따 11시부터 시작돼요. 빨리 달릴 텐데, 최 선생은 따라오기 힘들 거예요.”

첫 배달을 마친 장이 오전 11시 중소기업들이 몰려 있는 사무지구 근처의 식당가로 이동했다. 배달 앱 회사의 유니폼인 노란색 혹은 파란색 안전모와 점퍼를 착용한 배달기사들이 족히 100명은 넘어 보였다. 하나같이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손으로 ‘새로고침’을 하고 있었다. 장도 동참했다. 배달기사들의 하루 최대 승부처인 점심 배달 주문이 밀물처럼 들어오고 있었다.

지난달 하순 중국 베이징의 한 식당가에서 배달기사들이 배달 주문을 기다리고 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일부 기사들은 일찍 배달을 확정한 듯 대여섯개의 배달 꾸러미를 들고 바삐 움직였다. 배달 앱을 만지던 장 선생도 20여분 만에 스마트폰에서 얼굴을 떼고 기자에게 “오늘은 9건”이라고 말했다. 장 선생은 좌석 없이 배달만 전문으로 하는 원룸형 식당들이 모인 건물 안을 이곳저곳 돌며 음식 꾸러미를 수거하기 시작했다. 쓰촨 요릿집, 둥베이(동북) 음식점, 만둣집 등을 20여분 돌고 나자 그의 손에 9개의 음식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대부분 1인분 분량으로, 20~30위안(3700~5500원) 정도의 비싸지 않은 것들이었다.

‘이렇게 많은 음식을 어떻게 배달한다는 것일까?’ 의문이 드는 순간, 그가 급히 오토바이로 뛰어갔다. 9개의 꾸러미를 2개의 박스에 나눠 담고 서둘러 오토바이를 몰아 근처 사무지구로 이동했다. 시속 50㎞ 넘게 달리며, 교통신호는 안전이 보장되는 선에서 무시했다.

곡예 같은 배달이었다. 11시45분 첫 배달을 시작으로 50분-53분-55분-12시00분-2분-4분-7분-10분, 25분 만에 9개의 배달을 완료했다. 밀집된 사무실을 오토바이를 타고 요리조리 이동해, 건물 밖의 보관함이나 테이블에 음식을 두거나 본인에게 직접 전달했다. 오전 11시부터 20여분 동안 주문을 받고, 20여분 동안 음식을 수거한 뒤, 25분 만에 배달을 완료한 것이다.

장은 “지각하면 배달 수수료가 절반으로 깎인다”며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배달해야 한다”고 했다. 불친절하거나 배달에 문제가 생겨 고객에게 나쁜 평가를 받으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 하루를 기준으로 나쁜 평가 1개에 3위안(550원), 2개에 8위안(1480원), 3개에 15위안(2770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음식 꾸러미가 9개나 되는데 헷갈리진 않느냐’는 질문에는 “매일 하는 일이라 괜찮다”며 “이 근처 사무실 지도가 머릿속에 있다”고 했다. 아예 주문을 잡을 때부터 동선을 고려하는 ‘노하우’로 보였다. 9개 배달을 무사히 마쳐 그가 손에 쥔 돈은 70위안(1만2880원)이었다. 건당 약 8위안인 셈이다.

지난달 하순 중국 베이징 한 건물의 배달 상자에 음식이 배달되고 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한번에 이렇게 많은 배달이 이뤄지는 것이 놀라웠지만, 배달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직장인들이 많다는 것도 생소했다. 큰 건물 한쪽에는 어김없이 배달 음식을 보관하는 디지털 보관함이 있었고, 젊은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에 이곳에 와 각자 주문한 음식 꾸러미를 찾아갔다. 베이징에서 일하는 한 30대 직장인은 “가끔 식당에 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 점심을 배달시켜 먹는다”며 “편하기도 하고, 빨리 점심을 먹고 쉴 수 있어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전쟁 같은 점심 배달을 마친 뒤 장은 다른 주택가 쪽 상가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늦게 식사하려는 이들의 주문을 기다릴 요량으로 보였다. 1시간 가까이 기다렸지만, 적절한 배달이 없었다. 장은 “4~5년 전 막 배달 일을 시작했을 때, 이 근처에 배달원이 수십명이었다. 지금은 몇천명은 되는 것 같다”며 “배달 건수가 늘었지만, 배달원이 너무 많이 늘어 경쟁이 심해졌다. 배달료도 싸지고, 좋은 배달을 잡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좋은 배달이란 거리가 짧고 수수료는 비싼 것들이다. 오전 첫 배달처럼 5㎞에 12위안 정도면 괜찮은 배달이지만, 이날 오후 배달 앱에는 4~5㎞에 4~5위안 정도의 배달이 가득했다.

결국 추가 배달 주문을 잡지 못한 채 오후 2시께 점심을 먹으러 이동했다. 한 사무지구의 지하 식당가였다. 식당가엔 다른 사람의 점심 배달을 마치고 늦은 본인의 점심을 해결하러 온 배달기사들로 붐볐다. 식당들은 배달기사들에게 일반 손님보다 더 싼 가격에 식사를 제공했다. 이날 찾은 국숫집은 20위안짜리 고기국수를 배달기사에게는 13위안에 팔았다. 어려운 이들끼리 서로의 사정을 헤아려주는 듯했다. 뜨거운 국물을 한입 들이켠 장은 “점심때 배달을 더 해야 했는데, 실적이 좋지 않다. 아직 150위안(2만7700원)도 못 벌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중국 남부가 고향인 그는 10대 때인 1990년대 말 베이징에 와 20년 넘게 살고 있다. 부인은 베이징의 식당에서 일하고, 아이 셋은 고향의 노부모가 맡아 키운다. 한달에 생활비 수천위안을 고향에 보내야 한다. 그는 “한 달 수입이 7천~8천위안(129만~148만원)이다. 하루 300~400위안(5만5천~7만4천원) 벌기가 어렵다”며 “충분하지 않지만, 아내도 벌고, 그럭저럭 산다”고 했다. 수입이 빠듯해서인지, 그는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지난달 하순 중국 베이징에서 한 배달기사가 배달할 음식 꾸러미를 들고 움직이고 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고향을 떠나 처음 하게 된 일은 공사장 일이었다. 이후 친척 소개로 배달기사가 됐다. 장은 “건축 일이나 배달기사나 한 달 소득은 비슷하다”며 “하지만 배달이 덜 힘들고 덜 위험하다”고 했다. 또 하나의 장점으로 꼽은 것은 자유였다. “사정이 있으면 하루 쉴 수 있고, 좀 일찍 끝낼 수도 있어요.”

함께 점심을 먹고, 잠시 쉰 뒤 오후 4시께 다시 주택가 근처 상가로 이동했다. 다시 주문을 찾는 기다림이 시작됐다. 낮에 달궈졌던 해가 식으면서 바람도 더 차가워졌다. 주문을 찾고 또 찾아, 이날 저녁 8시까지 5건을 더 배달했다. 장은 이날 온종일 거리에 10시간 이상 머물며 총 15건을 배달해 120위안(2만2천원)을 벌었다. 베테랑 배달기사치고는 적은 수입이었다. 그는 “이런 날도 있다”며 “내일은 더 잘될 것”이라고 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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