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늘면 '공공의료'도 산다? "공무원만 좋은 일" 날 선 의료계

박정렬 기자 2023. 11. 7. 10:5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가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지 사흘째를 맞는 13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 노조측 입장을 담은 파업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23.10.13/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지역·필수의료 육성을 위해 추진 중인 의대 정원 확대가 정작 공공의료원 운영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군·면 등은 로컬 병·의원만으로 경증 환자의 처치가 충분하고 중증 환자도 대형 사립대병원을 선호해 설령 의사가 있더라도 환자가 찾지 않아 '적자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공공의료 살리기'란 명목하에 정치인과 공무원이 자기 배만 불리고 있다는 비난도 나온다.

7일 의료계에 따르면 공공의료원의 적자는 심각한 상황이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올해 전국 35개 지방의료원의 적자 규모는 평균 84억원가량으로 총 3000억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거치며 상황이 더 나빠졌다는 게 노조의 진단이다. 보건노조는 "코로나19 치료와 관련이 없는 많은 의사가 이직하고, 일반 환자도 줄어들면서 의료기관의 기능이 상당 부분 훼손됐다"며 "현금 보유가 바닥나 약제비 대금을 늦추고 임금이 체불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35개 지방의료원의 평균 병상 가동률은 올 6월 기준 46.4%로 병원 절반은 비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이전인 지난 2019년(80.5%) 대비 평균 41% 떨어졌다. 병상 가동률이 가장 낮은 속초의료원의 경우 병실 3개 중 1개(28.58%)도 채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

입원 환자뿐만 아니라 외래 환자 수도 함께 줄면서 경영상 타격은 더 심해졌다. 공공의료원의 1일 평균 외래 환자 수는 지난 2019년 789.2명에서 6월 현재 613.5명으로 22% 감소했다. 지난 2019년에도 당기순이익 적자를 기록한 지방의료원은 절반 이상인 18곳이었는데 올해 6월까지는 남원의료원을 제외한 34곳이 적자였다. 적자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성남시의료원으로 올해 상반기에만 당기순이익 84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의료계는 이런 공공의료원의 적자를 두고 "예상된 결과"라는 반응이다. 이유는 첫째, 인건비의 상승이다. 김 의원실의 분석 결과 지방의료원 35개 중 의사 정원을 충족한 병원은 16개, 간호사 정원을 채운 병원은 4개에 불과하다. 거주 환경이 불편한 만큼 더 큰 보상이 필요하지만 적자에 시달리는 의료원은 급여나 복지 같은 '당근책'을 의료진에게 충분히 제시하기 어렵다. 여기에 최근 공중보건의 지원율 하락이 더해져 상황이 더욱 악화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애초 지방 의료원은 처음부터 인건비가 낮은 공중보건의를 쓸 생각으로 지은 것"이라며 "최근 의대에 여학생의 비율이 늘고, 의학전문대학원은 이미 군대 문제를 해결한 '장수생'이 많아 애초 공중보건의 지원자가 없다"고 말했다. 입대를 앞둔 의대생들도 적은 임금을 받으며 오래 복무하는 공중보건의보다 일반병을 선호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둘째, 약한 의료 경쟁력이다. 지역 의료원은 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도시의 외곽(서울, 부산, 인천, 천안, 공주)이나 심지어 산 중턱(충주, 제주)처럼 환자가 쉽게 찾기 어려운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경증 환자를 보는 지역 병·의원은 이미 많고, 어렵게 의사를 구해도 각 전문 진료과를 모두 확보하기 어려워 중증 환자의 '배후진료'가 불가능하다는 한계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애초 중증 환자는 공공의료원 대신 '큰 병원'을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사를 데려와도 환자는 늘지 않고, 높아지는 의사 인건비에 되레 적자 규모만 커지는 악순환이 공공의료의 현실인 상황에서 병상과 의료 장비를 추가로 확충하는 것은 되레 '예산 낭비'라는 또 다른 갈등을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서울=뉴스1) 김민지 기자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조합원들이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의료연대본부 총파업·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공공의료 인력 충원, 의료민영화 저지 등을 촉구하고 있다. 2023.10.12/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상태로는 의대 정원 확대의 '낙수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의료계의 시선이다. 의사가 늘어 인건비가 낮아지고, 공공의대를 설립해 의료원에 반강제로 의사를 배치해도 일반 국민이 바라는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기대하지 못하니 수요(환자 수)를 높이기엔 한계가 따른다는 논리다. 또 다른 의료계 인사는 "의료원 육성은 해당 지역의 정치인들이나 직장으로 삼는 공무원에게나 의미만 있지 실제 주민들의 의료 질과는 큰 관련이 없다"며 "공공의료의 질적·양적 향상을 위해 전체적인 시스템을 정비해야지, 그렇지 않은 단기 처방은 '밥그릇 싸움'처럼 비칠 뿐"이라고 말했다.

김휘택 부산의료원장은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3년여간 일반 환자 진료를 거의 못하다 보니 각 공공의료원의 경영 상황이 더욱 악화한 게 사실"이라며 "의대 정원만 늘려서는 공공의료의 '기초체력'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공공의료원이 자생할 수 있는 정책적인 뒷받침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