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협회장은 대형로펌 고문이 아니다 [하영춘의 경제 이슈 솎아보기]

2023. 11. 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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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부가 출범한 지 8개월쯤 지난 1993년 10월 30일.

당시 정춘택 은행연합회장(전 은행감독원장)과 정소영 생명보험협회장(전 농수산부 장관), 박봉흠 손해보험협회장(전 동자부 장관) 등 7개 금융협회장들이 일제히 사퇴했다.

그 결과 김광수 은행연합회장(금융위 출신), 정지원 손보협회장(금융위 출신), 정희수 생보협회장(3선 의원 출신) 등 관피아와 정피아(정치인과 모피아의 합성어)가 협회장 자리를 싹쓸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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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부가 출범한 지 8개월쯤 지난 1993년 10월 30일. 당시 정춘택 은행연합회장(전 은행감독원장)과 정소영 생명보험협회장(전 농수산부 장관), 박봉흠 손해보험협회장(전 동자부 장관) 등 7개 금융협회장들이 일제히 사퇴했다. 문민정부에 걸맞게 그동안의 낙하산 인사를 청산한다는 취지였다. 물러난 회장들은 대부분 장관(급)을 지낸 거물 관피아(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였다.

 이들의 자리를 순수 업계 출신들이 물려받았다. 은행연합회장에는 이상철 전 국민은행장이, 생보협회장에는 이강환 전 교보생명 사장이, 손보협회장에는 이석용 태평양생명 사장이 각각 선출됐다. 문민정부에 걸맞은 민간인 협회장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이들의 3년 임기가 만료되자 다시 관피아들이 득세했다. 변화가 온 것은 20여 년이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로 관피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정부는 관피아의 금융협회장 취임을 원천 금지했다. 그 결과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전 씨티은행장), 이수창 생보협회장(전 삼성생명 사장), 장남식 손보협회장(전 LIG화재 사장)이 다시 민간인 협회장에 올랐다.

 3년 후 상황은 또 달라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에 기여한 관피아들이 자리를 탐냈다. 감독 당국에서 민간인 협회장을 노골적으로 냉대했던 것을 체감한 회원사들도 관료 출신을 적극 원했다. 그 결과 김광수 은행연합회장(금융위 출신), 정지원 손보협회장(금융위 출신), 정희수 생보협회장(3선 의원 출신) 등 관피아와 정피아(정치인과 모피아의 합성어)가 협회장 자리를 싹쓸이했다.

 이들의 임기가 11월과 12월 만료된다. 후임 회장 선출작업이 시작되면서 이런저런 사람이 후보로 오르내린다. 은행연합회장 후보로는 신제윤·최종구 전 금융위원장,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 윤종원 전 IBK기업은행장 등 관료 출신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된다. 조준희 전 IBK기업은행장을 비롯해 KB금융의 윤종규 회장 및 허인 부회장, 조용병 전 신한금융 회장, 손병환 전 NH농협금융 회장 등 민간 출신 인사의 이름도 나온다. 
   
 생보협회장 후보로는 윤진식 전 국회의원, 성대규 신한라이프 이사회 의장, 임승태 KDB생명 대표 등 관료 출신과 일부 정치인 출신이 거론된다. 손보협회장 역시 허경욱 전 기획재정부 1차관과 유광열 서울보증 사장 등 관료 출신이 유력하다고 한다. 현 정부가 우리금융 및 KB금융 회장 선출 과정에서 개입하지 않은 것을 확인한 일부 후보들 간 경쟁은 사뭇 치열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들이 금융협회장을 탐내는 이유는 많다. 은행과 보험사 등을 대표한다는 명예가 우선이다. 은행연합회장 연봉이 7억원에 이르는 등 대우도 좋다. 그럴듯한 네트워크만 있으면 업무수행도 어렵지 않다. 비약한다면 적당히 폼만 잡으면 된다.

 과연 그럴까. 은행연합회와 생·손보협회 정관에는 회원사의 공동이익을 추구하고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 있다. 최근 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5대 시중은행의 1인당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허탈해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의 독과점 행태와 갑질에 대해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보험사들의 경우 새로운 회계기준인 IFRS17을 악용해 상반기 이익을 집단적으로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차기 금융협회장은 어쩌면 회원사의 공동이익 증진보다는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게 주된 책무일 수 있다는 얘기다. 관료 출신, 민간 출신을 따질 게 아니라 이런 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협회장으로 뽑아야 한다. 금융협회장은 대형로펌 고문이 아니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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