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삼성·SK 칩공장’ 볼모화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한겨레 2023. 11. 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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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준 교수의 반도체 기정학 시대 - ② 중국 현지의 한국 메모리 팹
최태원 SK 회장(오른쪽)과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이 2023년 9월15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SK 제공
반도체는 기술이 국제정치의 패권을 정하는 ‘기정학’(Techno-politics) 시대의 핵심 전략 산업입니다. 미국은 반도체 기업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면서, 중국으로 향하는 첨단 반도체와 생산 장비를 봉쇄했습니다. 중국의 기술 발달을 막겠다는 의도입니다.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 등은 난감한 상황입니다. 미-중 패권 갈등 속에 국내 업체의 공장이 ‘볼모’로 잡혀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반도체 삼국지’ 저자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가 생존을 위한 해법을 모색합니다.

중국 현지에서 메모리 팹(실리콘웨이퍼 제조 공장)을 운영하는 한국의 반도체 대기업은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다. 이 중 삼성전자의 누적 투자 규모가 더 크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삼성전자에 더 불확실성이 커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불확실성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약할 것이다. 왜냐하면 삼성전자의 중국 시안 팹 주력 품목은 낸드플래시(Nand Flash)이기 때문이다.

낸드플래시 부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역대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 중이다. 이는 대용량 서버용 메모리 시장 수요가 예상보다 훨씬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 세계 시장에서 경쟁자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이 시장에서는 삼성전자, 에스케이하이닉스뿐만 아니라 미국의 마이크론, 일본의 키옥시아-미국의 웨스턴디지털(두 업체는 팹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연합체로 볼 수 있다), 대만의 난야테크놀로지, 최근에는 중국의 YMTC까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과거 반도체 산업 역사를 돌이켜 보면 치킨게임 직전의 상황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치킨게임 메커니즘은 대략 이렇게 진행됐다. 즉 다수의 생산 업체가 난립했다가 몇 분기 동안 팽창한 적자 규모를 못 이겨 자기자본이 잠식되는 시점이 도래한다. 경쟁력이 약한 업체들은 자본을 확보하기 어려워 차세대 팹 건설과 장비교체 주기를 놓치고, 차세대 메모리 선행 연구개발 투자규모도 축소된다.

이로 인해 선두업체들과 기술 격차가 벌어지고 생산비용은 더 올라간다. 그 결과 시장 점유율은 줄어들고 브랜드 가치는 떨어진다. 이는 다시 현금 확보의 어려움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로 귀결된다. 현재 이러한 사이클에서 가장 뒤처진 업체는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이다.

이때 선두 업체들, 특히 현금이 충분히 확보된 업체들은 이 악순환 구조를 더 깊고 빠르게 가속할 수 있다. 시장에서 출혈 경쟁을 하는 것이다. 이 적자 구조를 버티지 못한 반도체 업체들은 몰락하고 결국 청산 과정을 밟게 된다.

■ 낸드플래시, 치킨게임 직전의 상황

삼성전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그동안 쌓아 둔 수십조원 규모의 막대한 현금을 동원해 치킨게임을 가속할 수도 있고, 시안 팹 자체를 필요하다면 메모리반도체가 아닌 이미지센서나 아날로그 반도체 생산 용도로 전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장비를 차세대 반도체용으로 업그레이드하지 않고 팹을 유지하다 자연스럽게 중국 팹 생산 물량을 줄이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삼성의 중국 시안 팹 생산 물량은 삼성전자 전체 낸드 물량의 25% 이하이다.

즉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이미 불황인 낸드플래시 시장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주도할 충분한 여력이 있고, 그 여력은 미-중 관계보다는 시장 상황과 다음 세대로의 낸드플래시 업그레이드 시점을 택할 수 있는 전략적 판단에 활용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삼성전자의 시안 팹을 ‘인질’로 잡을 이유나 효용가치는 사실 별로 없다. 그러한 시도를 하는 순간 중국 정부와 반도체 업계의 신인도는 크게 하락하고, 중국에 진출한 외국계 반도체 기업의 철수가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염려되는 것은 장비가 아닌, 장비 운용 노하우 및 기술이다. 삼성전자나 에스케이하이닉스 같은 대기업보다는, 주변 협력사들이 특히 노하우와 전문 인력 탈취에 취약하다. 한국 정부가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 지점이 될 것이다. 중국 현지 한국업체들의 공장에 오성홍기가 휘날리는 것은 무서울 것이 없다. 그러나 오랜 세월 쌓인 노하우를 보유한 현지 팹의 공정 및 장비 엔지니어에 대해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무차별적인 스카우트 시도를 할 경우 노하우와 기술이 유출될 가능성이 클 수 있다는 건 경계해야 한다.

반면 디램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올해 추세를 보면 디램은 낸드플래시보다 흑자 시장으로 전환이 더 빠를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인공지능(AI) 전용 메모리반도체로 기대되는 HBM(고대역폭메모리)이나 PIM 같은 맞춤형 메모리로 전환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불붙고 있는 챗피지티 류의 생성형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어서다.

HBM 등에 대한 수요 급증을 감당할 수 있는 곳은 주로 디램을 전문적으로 만들던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이다. 3차원 구조로 맞춤형 메모리칩으로의 변모를 가능케 하는 공정 기술을 확보한 소수 업체다. 특히 삼성전자-에스케이하이닉스-마이크론 등 ‘디램 3강 체제’ 안에서도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가 고성능 메모리반도체 시장지배력을 높일 것으로 평가된다. 마이크론은 HBM 생산에 있어 한국 업체보다 적어도 1년 이상 뒤처졌기 때문이다.

■ ‘메모리 파운드리’ 생산 중심은 한국

이 디램 시장에서 에스케이하이닉스는 국내 업체로는 유일하게 중국에서 디램 팹을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장비수출 규제다. 중국 우시에 있는 에스케이하이닉스 디램 팹은 수출규제로 인해 1znm(10나노미터급 3세대)에서 1anm(10나노미터급 4세대)로 전환이 늦어지고 있다. 지난달 미국 상무부가 한국 반도체업체들의 중국 팹에 대한 반도체 생산장비 수출 유예기간을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조건 하에 무기한 연장하긴 했으나, 여전히 1znm, 1anm급 디램 생산을 위한 일부 핵심장비 수입은 통제하고 있다. 최신 세대 디램 생산 관점으로 보면 미 정부의 유예기간 연장은 실질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셈이다. 유예 불확실성이 해소된 장비들은 이전 세대의 저부가가치 디램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여전히 중국 팹 생산 규모는 5년 동안 총 5% 이하로 제한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즉, 연간으로 환산할 경우 1% 이내의 증산 수준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에스케이하이닉스의 우시 디램 팹 역시 중국 정부에 의한 ‘인질’을 논할 정도로 보기는 어렵다. 일각에선 디램이 낸드플래시보다 양산 기술장벽이 높으므로 중국 정부의 인수·강제 합병의 주요 목표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앞서 언급했든 중국 스스로 신인도를 깎는 오판이 될 뿐이다. 오히려 극자외선 노광장비(EUV scanner)의 중국 수입과 설치가 현재 가로막힌 상태라는 게 다행에 가깝다. 중국에서도 가장 확보하고 싶은 반도체 생산 장비들이지만, 에스케이하이닉스가 반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에스케이하이닉스가 미국 반도체법 지원을 얻어 미국에 팹을 신규 건설할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결국 삼성전자든 에스케이하이닉스든 한국 정부가 2040년대 중반까지 설계한 장기 지원정책과 로드맵에 따라 경기 남부와 충청 이북 사이의 지역에 대형 메가 클러스터를 만드는데 많은 투자를 하게 될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다. 이는 차세대 디램, 특히 맞춤형 디램과 인공지능 반도체를 타깃으로 하는 이른바 ‘메모리 파운드리’의 생산 중심지는 장차 한국이 될 것을 의미한다.

결국 한국 반도체 산업과 정부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중국 현지 팹의 ‘인질’화가 아니라, 중국 현지에서의 생산 비중이 자연스럽게 줄어들 때 이를 보강하기 위한 대안을 제한된 시간 내에 확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디램이나 낸드플래시 같은 범용 반도체시장 전체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수년간의 장기적 계획에 따라 정교한 팹의 전용 및 대체 계획을 세워야 한다.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화학공학부, 반도체융합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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