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알콜, 행동주의 펀드와 경영권 분쟁 조짐… 트러스톤 “회장 일가 일감 몰아주기 문제”
행동주의 펀드인 트러스톤자산운용과 한국알콜 사이의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비공식적으로 주주행동을 펼치던 트러스톤 측이 공개적으로 한국알콜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트러스톤은 한국알콜 지용석 회장 오너가(家)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를 문제 삼고 있다.
한국알콜은 1984년 설립된 국내 유일의 공업용 에탄올 제조사로, 소주의 원재료인 주정 등을 생산한다. 반도체, 이차전지 제조에 들어가는 초산에틸과 초산부틸의 경우 국내에서 50%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트러스톤은 10월 27일 법원에 2012~2014년 한국알콜 이사회 의사록 열람 및 등사 신청을 제기했다. 앞서 10월 19일 2015~2021년 한국알콜 이사회 의사록 열람 허가 소송을 제기한 후 두 번째 소송이다. 2015~2021년 의사록은 이달 1일 열린 관련 재판에서 한국알콜이 트러스톤에 전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트러스톤이 경영 개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움직임에 주가는 급등했다. 공시 후 첫 거래일인 6일, 한국알콜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710원(14.62%) 오른 1만341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 중 1만4750원까지 오르며 52주 최고가를 찍기도 했다.
트러스톤은 지난해 9월 한국알콜의 지분 5.14%를 확보했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양측의 동행이 무난하게 이어졌다. 한국알콜 측이 트러스톤의 요구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올해 3월 한국알콜 주주총회에서 트러스톤이 추천한 차재목 김앤장 변호사가 감사위원 겸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그러나 8월 들어 양측 사이가 틀어졌다. 트러스톤은 8월 말 한국알콜에 대한 투자 목적을 ‘일반 투자’에서 ‘경영권 영향’으로 변경했다. 트러스톤은 한국알콜의 과도한 내부거래에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알콜이 지용석 회장과 특수 관계인이 지분 100%를 소유한 비상장사 케이씨엔에이(KC&A)에 일감을 몰아주고 있다는 것이다. 케이씨엔에이는 6월 말 기준 한국알콜 지분 33.49%를 가진 최대주주다.
케이씨엔에이는 한국알콜 원재료와 외자 구매품 수입 등을 맡아 대행 수수료를 챙긴다. 2022년 케이씨엔에이의 연매출 중 절반(2400억원)을 한국알콜에서 거뒀다. 트러스톤은 한국알콜이 자체적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사업을 가족회사인 케이씨엔에이 등에 맡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트러스톤이 한국알콜과 케이씨엔에이 간 계약이 공정한 조건인지를 증명할 자료를 요구하고 내부거래 축소를 요구하는 주주 의견을 내자, 한국알콜이 트러스톤의 요구에 더는 응하지 않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러스톤 관계자는 “감사위원 선임까진 협의가 잘됐는데, 내부거래 감축 등의 요구는 한국알콜 측에 부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 이후로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아 법원에 의사록 허가 소송을 냈다”고 설명했다.
트러스톤은 지난달 24일 한국알콜 주식 22만3220주(1.03%)를 추가로 확보해 지분율 9.37%로 2대 주주 자리를 굳혔다. 트러스톤은 이사회 회의록을 통해 한국알콜의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 현황을 들여다볼 예정이다. 트러스톤은 또 2012~2014년 의사록을 확보해 한국알콜이 케이씨엔에이 주식 매각을 승인한 것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볼 것으로 보인다. 한국알콜은 2012년 약 4억원 규모(1만6700주)의 케이씨엔에이 지분을 매각했다. 당시 한국알콜 주주 사이에선 일감을 몰아줘 안정적으로 돈을 벌던 ‘알짜배기’ 회사 지분을 왜 팔았는지 논란이 있었다.
이성원 트러스톤 ESG운용부문 대표는 “한국알콜에 지속해서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높일 수 있는 요구를 하고 있다”며 “이사회 의결이 제대로 프로세스(절차)를 거쳤는지 확인한 후 내부거래 감소나 합병 방안 등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한국알콜 지분 추가 매입이나 공개 주주 서한 발송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 당장 고려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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