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자세와 정신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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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초순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추운 날이었다.
세계 금융사태로 회사에 위기가 닥쳐 멀리 선배 한 분을 찾아갔는데 책 한 권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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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초순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추운 날이었다. 세계 금융사태로 회사에 위기가 닥쳐 멀리 선배 한 분을 찾아갔는데 책 한 권을 줬다. 사정이 다급해 달려온 사람에게 기껏 책이라니! 돌아오는 길이 더욱 춥기만 했는데 책을 읽고서야 왜 그때 하필 『특집! 한창기』를 읽어보라 했는지 깨달았다.
‘한창기 선생만큼 해봤어? 앞으로도 무엇을 하든 한창기 선생만큼 하지 않을 거면 시작하지도 말라’는 훈수였고, 이후 만 13년 동안 줄기차게 북칼럼을 쓰게 된 첫 책이 됐다.
고 한창기 선생(1936~1997)은 1970~80년 대 전설의 월간지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의 발행인이었다. ‘한국 잡지의 역사는 <뿌리깊은나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만큼 한창기 선생의 역량은 독보적이었다. ‘서울대 법대’ 출신임에도 선구적 세일즈맨 기질로 크게 벌어들인 돈은 두 잡지의 발행에 더해 한글, 판소리, 항아리, 방짜유기, 잎차, 고문화재, 모시, 염색 등 서구화와 산업화에 밀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전통민중문화를 지키고, 복원하는 데 아낌없이 쓰였다. 그는 ‘좋은 일에는 돈을 불쏘시개처럼 쓸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1976년 3월에 그때까지 한국인이 본 적이 없었을 만큼 혁신적인 종합 월간잡지 <뿌리깊은나무>를 창간하였다. 한창기는 평소 생각대로 한글 전용, 가로쓰기, 전문 미술집단에 의한 지면 배열을 구현한 이 잡지를 통해 문화비평적 시각으로 세상을 시시콜콜 톺아보았다. 1984년 11월에 여성 종합문화지 <샘이깊은물>을 창간했다. 소비와 허영을 부추긴다고 비판받는 기존의 여성지와는 달리 여성주의 관점이 밴 아름다운 ‘사람의 잡지’였다”는 것이 이 책 출판에 관여한 사람들의 총평이다.
후진의 평가가 그러하듯 『특집! 한창기』에는 내가 나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늘 밤에도 가야 할 먼 길이 있는 사람의 자세가 들어 있다. 진정한 장인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잘 썼다는 처세술이나 자기계발서보다 훨씬 자기계발적이다. 기막힌 러브스토리마냥 가슴을 뭉클하게 하다가는 무협지를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 심장을 두근거리게도 한다.
서구문물과 산업화를 지상과제로 삼아 우리의 것을 돌보지 않고 심지어 무시하던 시대에 “토박이 문화가 역사에서 얕잡힌 숨은 가치를 펼치어, 우리의 살갗에 맞닿지 않는 고급문화의 그늘에서 시들지도 않고 이 시대를 휩쓰는 대중문화에 치이지도 않으면서, 변화가 주는 진보와 조화롭게 만나야 한다”는 것이 <뿌리깊은나무> 창간사 요지였다. 50년 전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K-한류’ 탄생이 가능했을까?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갖춘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추앙받는 성공의 조건을 알고 싶다면 『특집! 한창기』 일독을 하시라. 머리가 뜨거워지고, 심장이 고동치면서 ‘이의 반만이라도 하고 살자’는 섬광이 당신의 뒤통수를 후려칠 것이다. 선생의 존재와 정신에 다가서는 순간 고품격 삶의 시작, 절반의 성공이다. 국내 내로라하는 세일즈맨 영웅들과 언론, 출판, 문화계 쟁쟁한 면면에 그의 정신과 자세가 전해 흐르고, 저자로 참여한 ‘강운구와 쉰여덟 사람’ 역시 그들 중 일부니까.
책을 읽은 후 순천시 국가정원이나 선암사, 송광사에 갈 적이면 낙안읍성에 있는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도 들러보길 권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선정한 ‘2023년 로컬 100(지역문화 매력 100선)’에도 든 박물관인데 고 한창기 선생의 서사와 생전에 수집한 유물 6500여 점을 보존, 전시 중이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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