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의 수도, 스타들 설 곳이 없다
잔디 훼손 이유로 공연 꺼리는 상암경기장
야구시즌 4~10월엔 대관 불가능한 고척돔
2만명 이상 수용 가능한 장소 찾기 어려워
테일러 스위프트 등 해외스타도 내한 패싱
미국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최근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했다. 순수하게 공연과 앨범만으로 이런 성과를 이룬 첫 아티스트다. 하지만 내년 테일러 스위프트의 월드투어에 한국은 포함되지 않는다. 도쿄, 싱가포르는 방문하는 터라 팬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더 크다. 이는 록밴드 콜드플레이도 매한가지다. 2017년 내한 당시 10만 관객을 모을 정도로 국내 팬덤이 탄탄하지만 12월 일본에만 갈 뿐, 한국에는 오지 않는다.
‘한국 패싱’이라며 국내 팬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그 원인은 ‘공연장’이다. K-팝이 전 세계 음악 시장의 중심이 됐는데, 정작 한국에는 대형 공연장 하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해외 가수뿐만 아니다. 오는 12월 공연을 여는 가수 나훈아 역시 티켓 구하기 어려운 가수로 유명하다. 하지만 대구, 부산, 일산은 가지만 서울 공연은 없다. 같은 이유다. 대관이 안 된다.
K-팝 공연장의 부재는 지난 9월부터 현실화됐다. 회당 5만 명을 동원할 수 있는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이 리모델링에 돌입하면서, 서울에서 회당 2만 명 이상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을 구할 수 없게 됐다. 잠실보조경기장 역시 이전 공사로 휴업 상태다.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은 스타들의 성지였다. 마이클 잭슨 외에 레이디 가가, 폴 매카트니 등 글로벌 스타를 비롯해 조용필, 서태지, 방탄소년단, 아이유, 싸이 등 슈퍼스타들이 이 무대에 섰다. 하지만 지난여름 브루노 마스와 싸이 공연을 끝으로 더 이상 예약을 받지 않고 있다. 최소 3∼4년 정도 정비 기간이 필요하다.
서울에 5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는 한 곳 더 있다. 상암월드컵경기장이다. 대중 가수가 공연을 펼친 적도 있다. 지난 2012년 ‘강남스타일’로 미국 빌보드 핫100에서 2위까지 오른 싸이가 이듬해 이곳에서 5만 명을 동원했고, 2016년 8월에는 빅뱅이 공연장을 활용했다. 하지만 상암월드컵경기장은 빅뱅 이후 대중 가수의 공연을 허락한 적이 없다. 지난 8월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 K-팝 콘서트가 열린 것은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이는 상암월드컵경기장이 사실상 축구 전용 구장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국내 프로축구 K리그 FC서울의 홈구장으로 쓰이고 국가대표 대항전인 A매치가 열리는 곳이다. 대중 가수의 공연을 할 때는 스탠딩석도 열어야 하는데 이때 잔디가 훼손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잼버리 K-팝 콘서트가 끝난 후에도 2021년 10억 원을 들여 가꾼 잔디가 망가져 2억 원이 넘는 복구 비용이 들어간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현재 유일한 대안은 최대 1만5000명까지 수용 가능한 서울 올림픽공원 내 KSPO돔(옛 체조경기장)이다. 최근 가수 김동률과 임영웅이 2주에 걸쳐 각각 6회 공연으로 6만 명과 9만 명을 모았다. 한 가요 관계자는 “잠실주경기장 2회 공연으로 10만 명을 모으는 테일러 스위프트나 콜드플레이가 KSPO돔을 활용한다면 한국에 2주 이상 머물러야 한다”면서 “효율성 면에서 한국 공연을 포기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서울 외곽으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지난 9월 내한한 미국 팝스타 포스트 말론은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를 택했다. 4홀과 5홀을 하나로 합쳐 총 3만 석 규모였다. 하지만 일산은 접근성이 떨어지고 내한 가수들이 선호하지 않는다.
가요계에서는 일찌감치 공연장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는 지난 2021년 8월 성명을 통해 “4년이 넘는 긴 공사 기간 잠실주경기장과 보조경기장 등 무대를 세울 자리를 잃게 된다. 그 기간 공연을 차질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공연시설의 순차적 개발 계획 및 대체 공연 시설을 마련해 주길 요청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2년간 대안은 없었고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됐다. 공연 업계가 대관료뿐 아니라 티켓 판매 대금의 8%에 해당하는 수십억 원 상당을 할부대관료 명목으로 매년 제공하는 등 시설 운영에 기여했음에도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업계의 불만은 더 크다.
10월 초 서울 성수동 삼표레미콘 공장 부지에 문을 연 성수문화예술마당(1만5000명 규모)이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됐다. 2022년 8월 공장이 철거된 자리를 향후 2년간 공연장으로 활용한다. 하지만 시한부인 데다가 전용 공연장이 아니어서 공연 완성도가 떨어진다. 또 외부 공연장이기 때문에 한겨울에는 이용이 어렵다. 한 K-팝 시장 관계자는 “국내 K-팝 가수들의 공연을 국내에서 못 보고 외국 공연을 쫓아다녀야 하는 촌극이 빚어질 수 있다. 훌륭한 소프트웨어를 담을 하드웨어가 부족한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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