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시대…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선택하는 것들 [매경포럼]
최고의 방법이 글쓰기
그 능력을 AI에 넘긴다면
인간성의 토대를 잃는 것
인간은 글을 쓰면서 자신을 표현하고 알게 되는 존재다. 그렇게 쓰인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자신을 성찰한다. 그런데 그 글을 챗GPT가 대신 써준다면,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자신의 힘으로 알아낼 수 있을까. 챗GPT가 써 준 글의 감옥에 갇혀 우리가 누구인지 파악하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무엇에 맞는 사람인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챗GPT에게 물어보게 될 것이다. 챗GPT가 우리 각자의 ‘삶의 의미’를 정해주는 셈이다. 챗GPT가 인간의 신(神)이 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고도 우리는 ‘자유 의지’가 있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글을 써야 한다. AI보다 잘 쓰든 못 쓰든 상관없다. 자기감정을 비롯한 내면을 표현하면 된다. 나를 더 잘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내 삶의 길을 찾게 된다. 삶의 의미를 발견하면서 우리는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간다.
그래서일까. 삶이 힘들 때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삶이 무의미해 보일 때 글을 쓰면서 마음의 치유를 얻는다고 했다. 우울증을 겪는 이들 가운데 종종 작가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고통받는 자신의 마음을 더 잘 알고 싶어 일기를 썼고, 이를 통해 치유의 경험을 얻었으며, 그 경험을 타인과 나누는 이들이다.
‘초록색 범벅 인간’ 저자 김하은이나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의 저자 이수연도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김하은은 “나를 괴롭히던 것들을 기록해 보려”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열다섯 살의 나는 그렇게 괴로웠음에도 지금 살아 있다고, 그러니 더 열심히 살아가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매일 죽는 날짜를 정해놓고 살았고 죽을 계획을 상세히 세웠다”는 10대 소녀가 글을 쓰면서 그 고통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해간 것이다. 저자가 마음의 병을 고백한 탓에 고교 기숙사에서 퇴소해야 했던 날을 견디게 한 것도 글쓰기였다. “기숙사에서 쫓겨난 날 강남 교보문고 앞 버스 정류장에서 모든 것을 관둬버릴까 했지만 그러기엔 이미 (글쓰기라는) 물에 한창 적셔져 불고 불은 날들이 가득했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살면 된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이수연은 정신병동에서 쓰기 시작한 일기가 자신의 인생을 바꾸었다고 했다. 그 글을 모아 책을 출판한 뒤에 “작가님 덕분에 오늘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는 말을 들었고, 그 덕분에 “제가 오늘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글쓰기 덕분에 자기 마음은 물론이고 남의 마음에도 삶의 의미를 보탠 것이다.
150만 명의 유대인이 희생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 프리모 레비는 사방에 죽음의 위협이 도사린 곳에서 기차표와 낡은 종이를 찾아 글을 썼다. 레비는 “추위와 전쟁 속에서 감시의 눈초리를 피해 글을 썼다. 그 메모들을 어떤 식으로 간직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그 메모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이 오면 당장 그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글을 썼다”고 했다. 글쓰기를 통해 자기감정과 경험을 성찰하며 대면한 덕분일까. 그의 책 ‘이것이 인간인가’에는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인에 대한 증오와 분노의 표현이 없다.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과 파시즘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다.
이처럼 글쓰기는 고난 속에서 인간성을 지키고 치유하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다. 삶의 의미가 상실되는 우울증이 들불처럼 번져가는 시대에 그 능력마저 AI가 가져간다면 우리는 인간성의 소중한 토대 하나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럴 수는 없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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