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선 트럼프 "몇개 제안한 적 있다"…자산부풀리기 일부 시인(종합)
"마녀사냥" 검찰·판사 공격 계속…판사, 트럼프 장광설 제지하기도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임미나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자산가치 조작 의혹 관련 민사 재판에 출석, 과거 재무제표 작성 과정에서 가치 평가에 일부 개입했음을 인정했다고 AP통신과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이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뉴욕 맨해튼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회사의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데 직접 관여했는지에 대한 검찰 측 추궁에 "내가 한 일은 회계사들이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데 필요한 것을 주도록 사람들에게 말하고 승인한 것뿐"이라고 답했다.
이어 회계사들이 작성한 재무제표 기록에 대해 "내가 보고, 어떤 경우에는 몇 가지 제안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맨해튼 북쪽에 있는 대규모 부동산 '세븐 스프링스'에 대해 기존에 평가된 가치가 "너무 높다고 생각했다"며 재무제표상 가치를 낮춘 사실을 인정했다.
NYT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런 진술이 재무제표 작성에 본인이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기존 주장을 약화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짚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가치 평가에 참여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점심시간 후 재개된 이날 재판에서 자신이 저평가돼 있다고 생각한 마러라고 리조트를 포함, 그러한 가치 평가 작업에 개입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앞서 이 사건을 맡은 아서 엔고론 판사가 마러라고 리조트의 가치를 플로리다주 세금 감정 기록에 근거해 1천800만달러(약 234억원)로 평가한 것을 언급하며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마러라고 리조트의 가치를 얼마로 보느냐는 검찰 측 질문에 "10억달러(약 1조2천990억원)에서 15억달러(약 1조9천485억원) 사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이 거래한 은행 측이 재무제표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면서 "너무 오래 전 일이고, 공소시효를 훨씬 넘겼다"는 주장도 되풀이했다.
그는 또 재무제표에 기록된 면책 조항을 들어 자산 조작 의혹을 방어했다.
그는 2011∼2017년 재무제표에 부풀려진 자산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느냐는 검찰 측 질문에 면책 조항을 거론하며 "내가 이 진술에 너무 몰두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그(면책) 조항이 (재무제표의) 첫 페이지에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어 어떤 법원에서든 면책 조항을 인정할 것이라며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소송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재무제표에 트럼프타워 펜트하우스가 실제 크기의 3배로 기재된 이유를 묻는 검찰 측 질문에도 "우리가 실수했을 수 있다"고 답했다가 다시 건물의 지붕 면적을 추가했기 때문일 수 있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면서 "우리는 뉴욕주 검찰총장으로부터 소송당하지 않아도 되는 면책 조항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검찰은 법원에 낸 고소장에서 이 재무제표의 면책 조항에 대해 회계사들이 보다 엄격한 감사 업무를 수행하는 데 준수해야 할 특정 의무를 면제해 줄 수는 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 등에게 허위 및 오해의 소지가 있는 자산평가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재판에서도 검찰과 판사를 향한 공격적인 언사를 이어갔다.
그는 재판 초반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을 향해 "이것은 정치적 마녀사냥"이라며 "그는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또 이 재판을 맡은 엔고론 판사에 대해서도 "그는 나를 사기꾼이라고 불렀고,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며 "사기는 내가 아니라 법원에 있다"고 주장했다.
엔고론 판사는 정식 재판 시작 전인 지난 9월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은행 대출 등을 위해 보유자산 가치를 부풀리는 사기 행각을 벌였다고 일부 혐의를 인정한 바 있다.
엔고론 판사는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장광설이 이어지자 발언을 짧게 해달라고 여러 차례 주의를 줬고, 독백에 가까운 진술 일부는 기록에서 지우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엔고론 판사는 "이것은 정치집회가 아니다"라면서 "낭비할 시간이 없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을 자제시키기도 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변호사에게 "당신의 의뢰인을 통제해달라"며 "그럴 수 없다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추론을 끌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 유세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거침 없는 수사와 정치적인 발언을 이어가자 엔고론 판사도 결국 이를 막지 못하고 대부분 무시하면서 재판을 이어갔다고 미국 매체들은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재판에서 "당신들이 나를 하루 종일 이 법정에 세우려고 하기 때문에 이것은 선거 개입"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번 재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받는 형사재판 4건과는 무관한 별개의 민사 사건이다.
앞서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은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은행 대출 등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10년 이상 뉴욕의 저택과 최고급 아파트, 빌딩, 영국과 뉴욕의 골프장 등 다수의 자산 가치를 22억달러(3조원)가량 부풀려 보고했다며 지난해 9월 뉴욕주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제임스 장관은 이날 재판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그는 횡설수설했고 모욕을 퍼부었지만, 우리가 예상했던 것"이라며 "서류 증거들은 그가 자산을 거짓으로 부풀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8일 이어지는 재판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트럼프가 출석해 증언할 예정이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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