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혹한기에도 잘 나가네…뭉칫돈 몰린 '세 분야' [긱스]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추산한 3분기 벤처투자 통계가 공개됐습니다. 이번 분기만 놓고 보면 신규 벤처투자액은 2분기 대비 소폭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지난해에 비해선 크게 못 미치는 성적입니다. 벤처투자 혹한기가 지속되는 와중에도 빛났던 분야는 있었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3분기 성과를 알아봤습니다.
3분기 벤처투자시장에 '반짝' 훈풍이 풀었다. 하지만 '벤처 붐'이 불던 2021년에 비하면 투자액이 한참 못 미치는 데다가 신규 펀드 결성액도 지난해 대비 줄어 투자 '혹한기'는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시장 침체 속에서도 투자 증가세를 보인 분야도 있었다. 반도체 등 딥테크 분야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는 몇 년 간 꾸준히 자금이 몰렸고, 전기차 시대를 이끌 충전기·배터리 등 관련 분야는 2년 새 투자가 세 배 증가했다. 또 팬데믹이 종식되면서 트래블테크 스타트업도 성장세를 유지했다.
소폭 증가했지만...
7일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 3분기 집행된 신규 벤처투자액은 1조444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5%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 2분기와 비교하면 8.6% 늘어났다. 다만 1~3분기 누적으로 보면 벤처투자액은 3조6952억원으로 지난해 1~3분기(5조4372억원)보다 32% 낮다. 한창 시장 유동성이 풍부했던 2021년엔 3분기에만 2조1863억원의 투자가 집행됐다.
3분기까지 새롭게 결성된 펀드는 184개, 약정액은 4조1129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엔 3분기까지 275개 펀드가 새롭게 만들어졌고 7조2275억원의 약정액을 기록했다. 투자 비중을 업종별로 보면 ICT서비스가 26.8%로 가장 높았고, 바이오·의료가 17%로 뒤를 이었다. 이어 유통·서비스(12.2%), 전기·기계·장비(12.1%), 영상·공연·음반(8.5%) 순이었다.
다만 업종별 투자 비중 증가율을 따지면 전기·기계·장비, 화학·소재, ICT 제조 등 소부장(소재·부품·장비)나 딥테크 업종이 성장세를 나타냈다.
회수 비중은 인수합병(M&A)이 44.4%로 가장 높았다. 또 기업공개(IPO) 시장이 점차 활력을 되찾으면서 IPO를 통한 VC들의 투자금 회수 비중도 지난해 24.3%에서 올해 3분기까지 38.7%로 높아졌다. 2020년(38.9%) 이후 가장 높다. 올해 상장한 회사 77곳 중 절반 이상인 41곳에 VC가 투자했다.
지속되는 투자 혹한기는 세계적인 추세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3분기 전 세계 벤처투자액은 646억달러(약 86조7000억원)로 2분기 대비 11% 늘었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23% 줄었다. 1~3분기 누적으로 놓고 보면 45% 감소했다.
불붙은 전기차 경쟁
스타트업 투자정보 플랫폼 더브이씨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전기차 분야(충전기, 배터리, 전기에너지) 스타트업·중소기업에 흘러들어간 투자액은 2273억원으로 집계됐다. 팁스 선정 등으로 인한 지원금이나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 시 조달액 등은 제외한 수치다. 지난해 같은 기간(1167억원)보다는 두 배 가까이, 2021년(761억원)보다는 세 배 늘어난 금액이다. 벤처투자 '혹한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조달액이 증가했다.
투자액이 많이 몰린 회사는 충전 인프라를 보유한 회사다. 올해 가장 큰 투자를 유치한 전기차 회사는 대영채비다. 이 회사는 지난 6월 스틱인베스트먼트와 KB자산운용으로부터 1200억원을 조달했다. 2021년에도 스틱과 휴맥스모빌리티 등으로부터 600억원을 투자받은 바 있다. 기업가치는 5000억원 수준까지 불어났다.
2016년 설립된 이 회사는 급속충전 분야 국내 1위 사업자다. 전국에 8000여 기의 급속충전기 인프라를 보유했다. 월 1만~2만원대의 구독 요금제를 선보였다. 매달 일정 수준의 충전량을 제공하고 할인 혜택을 주는 식이다. 최근엔 해외 무대로 발을 넓히는 중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충전기 5000기를 수출하는 계약을 맺었다, 또 인도네시아 에너지 회사인 인디카에너지와 충전기 납품 계약을 맺기도 했다.
완속충전기 분야 선두권 업체인 에버온은 지난 7월 500억원 규모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산업은행, DSC인베스트먼트, HB인베스트먼트, 기업은행, L&S벤처캐피탈, 산은캐피탈, 나우IB캐피탈, K2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 서울투자파트너스, 이앤벤처파트너스 등 다수 투자자가 이 회사의 성장성에 베팅했다. 당초 목표액인 300억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LG CNS 자회사로 출범해 2016년 분사한 이 회사는 회원 10만 명, 충전기 2만5000여 기를 보유했다.
그밖에 자율주행 충전 로봇, 카트형 충전기 등을 내놓은 에바는 지난 7월 시리즈B 투자 라운드에서 220억원을 끌어모았다. 삼성전자 사내 벤처 ‘C랩’ 분사기업인 이 회사는 지금까지 전국에 완속충전기 2만 대를 공급했다. 캐나다를 시작으로 북미 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날아오른 소부장 & 돌아온 여행의 시대
반도체·디스플레이와 3D 프린팅·화학·소재 같은 소부장, 딥테크 분야엔 3분기에만 2173억원이 흘러들어갔는데, 투자 혹한기 속에서도 지난해 3분기(1992억원)보다 규모가 커졌다. 2021년 3분기(1043억원)보다는 두 배 이상 투자액이 늘었다.
데이터처리가속기(DPU)를 만드는 시스템반도체 스타트업 망고부스트는 700억원대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DPU는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시스템 운영시 사용되는 서버의 과부하를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시스템반도체의 한 종류다. 김장우 서울대 교수가 지난해 창업한 이 회사는 시드(초기) 투자에서 130억원을 끌어모으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반도체 설계 솔루션 회사 세미파이브도 675억원을 조달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국내 디자인솔루션파트너(DSP) 중 한 곳이다. 또 스마트팩토리 외관 검사 솔루션을 가진 세이지리서치는 155억원을 끌어모았다. 2017년 문을 연 이 회사는 딥러닝을 기반으로 제품 외관에 문제가 없는지 등을 파악하는 솔루션을 내놨다. 사람의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결함을 자동으로 검출해준다.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등 대형 고객사를 확보했다.
엔데믹으로 접어들면서 여행업계도 반색했다. 올 3분기까지 트래블테크 스타트업엔 1890억원의 투자가 몰려 지난해 같은 기간(1732억원)보다 투자액이 늘었다.
캠핑용품 브랜드로 유명한 헬리녹스는 1200억원을 유치해 이 분야에서 올해 가장 큰 금액을 조달했다. 또 '한 달 살기' 숙소 예약 플랫폼인 리브애니웨어는 시리즈A 투자로 50억원을 유치했다. 이 플랫폼은 엔데믹을 타고 앱 다운로드 130만 건, 연 거래액 140억원을 넘어섰다. 또 여행 계획 솔루션을 제공하는 글로벌리어는 빅베이슨캐피털, 케이넷투자파트너스 등으로부터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그밖에 O2O 숙박 스타트업 지냄, 베트남 호텔 예약 서비스 고투조이 등이 올해 투자를 유치했다. 인바운드 여행 플랫폼 크리에이트립의 임혜민 대표는 "코로나19가 종식 국면을 맞으면서 국내 방문 외국인 여행객이 월 100만명을 넘을 정도로 늘어났다"며 "여행 산업 자체가 활기를 띠고 있어 앞으로 우상향하는 시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혹한기 이어지지만... "받을 곳은 받는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벤처투자 시장 침체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하반기 이후부터 점차 회복될 것으로 전망됐지만, 여전히 거시 경제 환경이 좋지 않은 데다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악재까지 겹쳐서다. 장원열 카카오벤처스 수석은 "스타트업과 VC의 양극화가 지속되는 등 내년 투자 시장도 올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유망 분야에는 계속해서 투자가 몰릴 것으로 진단했다. 맹두진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부사장은 "딥테크와 소부장 분야의 투자는 지속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며 "거시 환경의 불확실성 지속이 우려되지만, 생성형 AI를 포함한 AI의 발전과 로봇의 적용이 산업계 전반과 일상에 폭넓게 스며들고 있어 수익모델을 갖춘 기업에 대한 투자가 증가할 것으로 보이고, 전기차를 포함한 모빌리티와 반도체, 기후테크 분야의 투자도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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