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가인권위를 구하라

한겨레 2023. 11. 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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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난해 11월15일 이충상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오른쪽)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임명장을 받은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기고]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가인권위원회가 위험하다. 인권보다는 권력의 논리를 앞세우며, 토론과 합의의 정신 대신 독단의 우격다짐을 우선하는 인사들에 의해 국가인권위가 안으로부터 잠식당하고 있다. 국가인권위는 국민 인권 수호를 위한 최후의 보루다. 그런 국가인권위가 지금 절명의 위난에 빠져 있다. 이명박 정권의 반인권적 행태로 인해 심각한 무력감에 빠져야 했던 이 인권기구는, 그 이명박 인사들이 다시 부활한 이 정부에 와서 존재감마저도 위협받는 상황에 봉착했다.

이런 사태는 두명의 상임위원들이 자행하는 일탈적 행태로부터 비롯된다. 국가인권위 운영과 논의는 침해구제·차별시정·군인권보호 등 인권 분야별로 구성된 소위원회가 출발점이 된다. 그런데 이 소위를 담당하는 두 상임위원이 아예 인권 적대적이다.

지난 5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을 결정문 초안에 넣었다가 세간의 비난을 받았던 이충상 상임위원은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법안에 대해서는 몇년에 한번이라도 반대해야 한다”는 정파적 진영논리의 발언조차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설치가 법치주의에 반한다고 말한 사람에게 “윤석열 정부에 대하여 강도 높은 비판을 자주 하는” 강성 좌파 인사라는 낙인을 찍는가 하면, 급기야 그 사람에게 자문 의견을 구했다는 이유로 소위 ‘윤석열차 사건’의 심의 과정을 엉망으로 오염시키기도 하였다.

김용원 상임위원 또한 그 못지않다. 정치적 중립성이 최고의 윤리인 상임위원임에도 그의 행보는 너무도 정치 추종적이다. 추석을 핑계로 과거 네번이나 출마했던 지역구를 찾아가 자신의 이름과 직책에 얼굴 사진까지 인쇄한 펼침막을 내걸었고, 최근에는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둔 부산 영도구 지역행사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총선 출마와 관련해 “결정된 바 없다”고 하지만, 외관상으로도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해야 하는 인권위원의 처신으로 너무도 부적절하다. 더구나 그가 맡은 침해구제 제1소위는 지난 8월1일 이후 한번도 열리지 않았다. 그 바람에 210건이 넘는 안건이 처리되지 못하여 직무유기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당하기도 했다. 기본적 인권의 최대한 보장이라는 헌법 명령은 이 상임위원의 정치성 행보에 휩쓸려 무력화되고 있다.

부산 영도구에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이 내건 추석 인사 현수막. 출처 인권위 내부 게시판

최근의 내부규칙 개정 사태는 이런 일탈들이 집적된 결과물이다. 국가인권위는 합의제 기구로 만들어졌다. 민주적이고 신중한 의사 절차를 통해 인권 보장에 만전을 기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신속한 인권구제를 위해 소위원회에서 위원 3명(상임위원 1명, 비상임위원 2명)이 합의해 안건을 종결짓고, 찬반이 나뉠 때는 전체위원회에서 보다 신중하게 검토하여 결정하게 하였다. 안건을 기각할 때도 마찬가지다. 국가인권위의 사건들은 하나같이 국민의 고통을 담은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절차가 인권구제 기관의 역할뿐 아니라, 다른 법제와는 달리 진정 기각에 관한 별도 규정(법 제39조)을 두고 있는 국가인권위법의 취지에도 부합한다.

그동안 국가인권위가 인권 보장의 교두보가 되었던 동력 중 하나가 이 합의제의 정신이었다. 그런데 이충상·김용원 두 상임위원이 주도하는 개정안은 이를 송두리째 부정한다. 소위에서 한명만 반대해도 그 안건은 기각된 것으로 처리하자는 것이다. 공개회의장에서도 내부 구성원이나 방청인들에게 인격 비하적인 망발과 막말을 서슴지 않던 이들은, 자신들의 정파적 이해관계를 벗어나는 안건은 언제든지 기각시킬 수 있는 절대권력을 추구한다.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것에 대해서는 찬성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 몇년에 한번이라도 있긴 있어야 한다”는 발언에 이어, 국민의힘이 만든 법령을 위하여 자기 혼자만으로도 인권침해 진정을 기각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런 운영규칙 개정안은 그 자체가 천부당만부당한 것인 만큼 의당 폐기되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국가인권위 내부에서 무소불위로 전횡하는 두 상임위원과 그에 편승하여 뇌동하는 일부 비상임위원의 횡포를 제어할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 우리의 인권 현실이란 점이다. 물론 그 책임은 이런 반인권적 인사를 인권위원으로 지명한 대통령과 국회가 져야 한다. 그러나 궁극의 처방은 우리 모두의 것일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에서 인권은 곧장 우리의 생활 문제로 이어지기에 우리의 입으로 인권을 말하고 우리의 행동으로 그들의 전횡에 항거하는 것, 그것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인권 세상을 만드는 길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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