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른자의 욕망’으로 홀리지 말라 [뉴스룸에서]
[뉴스룸에서][김포 ‘서울 편입’ 논란]
[뉴스룸에서] 이주현 뉴스총괄
경기도 외곽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삼남매를 주인공 삼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많은 이들의 추앙을 받던 지난해 봄. 나도 마침 경기도로 이사했다. 삼남매 집보다는 훨씬 더 서울에서 가까운 곳이었지만, 통근 시간이 길어지니 불편했다. 물리적 공간의 문제만도 아니었다. 이사 직후 충청도 한 소도시에 갔을 때 “어디서 오셨어요?” 질문을 받곤 “경기도, 아니 서울요…” 우물거리다가 깨달았다. ‘서울특별시민’이라는 허울에 싸여 집 없고 차 없는 무자산가의 처지를 심리적으로 방어해왔었다는 걸. 극 중 남자 주인공은 경기도를 서울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자’라고 자조하는데, 나 역시 더 이상 노른자 위에 있지 않다는 현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최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을 주장하며, 대한민국의 욕망을 정타했다. 지도만 봐도 김포가 서울이 된다는 게 얼마나 어색한 일인지 알 수 있다(노른자가 한강을 타고 흐른 모양새).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은 우물쭈물댔다. 서둘러 반대 입장을 냈다가 집값 상승 등을 기대하는 경기도 유권자들로부터 역풍을 맞을까 우려한 탓이다.
야당은 눈치 보기에 바쁘지만, 김포의 서울 편입론이 무책임한 주장이라는 것은 이미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김포시는 1년 전부터 서울시 편입을 준비했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경제효과나 편익 분석을 담은 공식 보고서 하나 없다. 한달 전 김포시로부터 제안받았다는 여당 역시 구체적 계획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중장기적 방향 없이 김포에 이어 하남·구리·고양 등 서울 인접 지역을 들쑤실 뿐이다. 총선을 앞두고 표만 쳐다보는 여당 의원들에게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인구 과밀이 집값·교육비 상승, 육아시설 부족 등으로 이어져 저출생의 주요 원인이 된다는 한국은행 보고서(‘지역 간 인구이동과 지역경제’)가 귀에 들어올 리 없다. 국토균형발전이나 지방분권 같은 가치, 안중에도 없다.
국토 공간의 자원 배분과 별도로, 안보 차원에서 보자면 ‘서울 김포구’ 주장은 무책임을 넘어 위험하다. 김포는 임진강·한강 유역을 놓고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접경지역으로, 북한과 거리가 가깝고 분쟁 소지가 많아 전투력이 뛰어난 해병대까지 상주하고 있는 민감한 곳이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북한이 김포에 침투해서) 서울에 상륙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 상징성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이 문제는) 군사작전 측면에선 유불리가 없는 가치중립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신 장관과 마찬가지로 서울 방위의 최고 지휘자였던 김도균 전 수도방위사령관의 설명을 들어봤더니 전혀 달랐다.
“수도 서울은 ‘전략적 중심’으로 전쟁 승패를 좌우한다. 서해나 동부 전선과 달리 수도에 포탄이 떨어지면 전면전 선포가 불가피하다. 전략적 중심이 접경지역이 된다면 군사자원을 더 집중하게 되고 우발적이든 의도적이든 도발 상황이 발생했을 시 매우 민감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 물리적 긴장이 훨씬 높아진다. 서울은 또한 군사분계선까지 종심이 50㎞밖에 되지 않는다. 9·19 합의로 완충지역을 늘린 것도 수도 방위에 목적이 있다. 수도 서울을 접경지역 일대까지 확대하자는 주장은 국가안보 전략 및 군사작전 수행 측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낼 것이 명확한 사안인데, 이런 주장을 현직 국방부 장관이 동조하는 것은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아마도 국민의힘은 2008년 총선에서 뉴타운 공약으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이 서울 48석 중 40석을 얻었던 꿈같은 일을 기대하는 듯하다. 뉴타운 광풍 이후 ‘노른자 특별시민’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 서울 재개발 및 도시계획의 총책임자인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선거 기간 내내 ‘전략적 모호성’으로 일관하다 선거가 끝나자 입을 열었다. “뉴타운 추가 지정은 없다.” 욕망의 풍선에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뉴타운 약속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김포가 서울이 될까. 내가 사는 고양도 서울이 될까. 그러면 우리도 ‘따릉이 자전거’ 타고 집까지 올 수 있나, 이웃과 농담하다 고개를 저었다. 우리 모두 서울로 만들어준다고? 헛소리다. ‘노른자의 욕망’으로 우리를 휘젓지 말라.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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