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족쇄’ 풀린 대북전단 살포… “심리전보단 존재 과시용” [심층기획]

김예진 2023. 11. 7.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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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기존 ‘자제요청’ 입장서 변경
헌재 “살포행위 처벌은 위헌” 판결
통일부도 “표현의 자유 보장 고려”
현정부 들어 경찰 제지도 소극적
“행정력, 헌재 결정 전부터 무력화”
민간 살포활동 제약 사라져… 효과는?
한국드라마 담은 USB·쌀·약 등 담겨
최대 살포범위 황해남도·개성 등 그쳐
탈북민들 “당국 철저단속… 주민도 경계
전기 없어 USB 볼 수도 없어” 회의적

민간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활동이 새 전기를 맞았다.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고, 통일부마저 ‘만류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무제약’ 시대

통일부는 민간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행위가 있은 지난 20여년 동안 천안함 폭침 직후를 제외하고는 모든 정부에서 일관되게 “자제 요청”을 공식 입장으로 내왔다. 하지만 지난 9월26일 헌재가 남북관계발전법상 대북전단 살포 행위 처벌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결한 직후 처음으로 “해당 단체와 소통해나갈 것”이라고만 밝히고 “자제 요청”은 뺐다. “민감한 남북관계와 접경지역 주민 안전을 위해 전단 살포는 자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누누이 밝혀왔던 기존 태도에서 변화한 것이다.
탈북민 박상학 대표가 이끄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남북 접경지역에서 대북전단 살포 활동을 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통일부 당국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헌재 결정 취지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 앞으로 이 문제를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자제를 요청하던 입장이 변경된 것이냐고 묻는 질문에 “그렇다”며 “자제 요청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남북관계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단체들과 소통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자제 요청’ 원칙이 이젠 선택 사항이란 것이다. “헌재 결정 취지에 입법 대안을 제시한 부분도 있어서 다양한 점을 고려해 앞으로 정부가 어떤 정책 방향을 취해나갈지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헌재는 이번 위헌 결정문에서 처벌 대신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에 따라 제지시킬 수 있다는 대안을 강조했지만, 현 정부 들어 대북전단 살포 시 경찰의 제지가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접경지역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일선 경찰들도 이미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위헌 결정은 형사처벌 대신 다른 행정력을 이용해 관리하라는 취지이나, 행정력은 헌재 결정이 나기 전부터 벌써 무력화돼 있다는 것이다.

◆대북전단 효과는?

사실상 제약 없는 시대를 맞은 대북전단 살포의 효과는 어떨까? 접경지역 일대에서 단체가 수소풍선에 달아 날려 보내는 것은 전단과 한국 드라마 등을 담은 USB, 쌀, 타이레놀 등이다.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북한군이 풍선을 사격해 수거하기도 하지만, 북한으로 날아가 확산하더라도 최대 살포 범위는 황해남도, 강원도, 개성 정도다. 지리적으로는 대부분 산간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특정 단체 소속이 아닌 어느 30대 탈북민 여성(20대에 탈북)에게 북한에 살 때 남한에서 날아간 전단을 봤는지 묻자 “북한에서는 거기에 독을 넣었다거나 글을 보면 눈이 멀고 먹으면 죽는다고 하니 겁나서 보지도, 먹지도 않는다. 발견하면 즉시 북한 보위부에 가져가 바친다”고 답했다. 그는 “주로 산이나 이런 데 떨어지는데, 북한 정부에서 철저하게 단속하기 때문에 주민들도 경계한다”고 덧붙였다. 쌀, 타이레놀 등 인도적 물품도 습득하지 않는지 묻자 “오면서 비 맞고 산 웅덩이에 떨어지고 하는데 그걸 누가 먹나. 게다가 정부에서는 그걸 먹으면 죽는다고 하는데”라고 답했다.

USB는 어떨까. 지방 주민이었던 탈북민은 “한국처럼 노트북이나 컴퓨터도 많지 않았고, 문제는 전기가 없어 볼 수가 없다”며 “요즘엔 컴퓨터가 있다고 하지만 전기는 여전히 없기 때문에 소용없다”고 말했다.
북한 내부에서 남한 드라마가 상당히 확산된 것으로 알려진 것에 대해서도 “국경지대에서 본다는 것이지 국경에서 먼 곳은 못 본다”며 “중국을 드나드는 밀무역업자들이 가져오는 것이고, 정말로 친한 사람 아니면 안 준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신고하면 당사자만이 아니라 가족, 사촌까지 다 죽인다고 공포정치를 하는데 누가 간 큰 행동을 하겠느냐”고도 했다.

그는 오히려 “그간 꾸준히 보냈는데 그것들을 다 봤다면 쿠데타가 일어나 통일이 됐겠지 왜 상식이 없나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이어 “제가 북한에 있을 땐 북한 사정을 모르는 남한 사람들이 보내는 건 줄 알았는데 한국에 와보니 북한 사람들(탈북민)이 보낸다는 걸 알고 어이가 없었다. 보내도 못 보는 걸 알면서 왜 돈을 없애나 싶다”며 “북한에 사는 사람들은 남한 정부가 주민들을 귀순케 하려고 보내는 줄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2021년 ‘통일정책연구’에 게재된 ‘민간 대북전단의 목적과 효과 연구’ 논문에 따르면 “대북전단은 외부 정보가 차단된 북한 사회에 새로운 정보 유입을 통해 인지 부조화(기존에 알고 있는 정보와 새 정보의 충돌)를 유발한 뒤 인지 부조화의 상태가 행동의 변화로 이어져야 목적이 달성된다”며 “목표 청중에 도달하지 못하면 정보 전달에 실패하고, 도달해도 행동 변화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거부감을 유발해 도리어 기존 믿음을 강화시키는 경우도 실패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민간 단체 활동과 관련해 “심리전 수행 장소가 상당 부분 사이버 공간으로 이전된 현대와는 다르게 대북전단은 재래식”이라며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고 북한군에 쉽게 포착되며 목표 장소가 정밀하게 지정되지 못한다는 약점에도 고수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효과적인 심리전 수행보다는 극단적 표현을 통한 존재감 과시에 주안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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